키르기즈인
키르기즈인 Кыргыз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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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스를 말하는 노인 | |
총인구 | |
약 4,855,000명 | |
거주지역 | |
키르기즈 | 380.4만명 |
우즈베키스탄 | 600,000명 |
중국 | 210,000명 |
타지키스탄 | 81,000명 |
파키스탄 | 60,000명 |
러시아 | 32,000명 |
카자흐스탄 | 11,000명 |
아프가니스탄 | 10,000명 |
터키 | 4,000명 |
우크라이나 | 3,000명 |
언어 | |
키르기즈어 | |
종교 | |
이슬람교 수니파 불교 |
키르기즈인(Кыргыз, Kyrgyz)은, 주로 키르기즈 공화국을 중심으로 중앙 아시아에 분포하는 테르크계 민족.자칭은 크루그즈.키르기즈 공화국의 약 260만명외, 주변의 구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제국이나 중국의 신쿄 위구르 자치구 등에도 수십만인이 살아, 중국 55 소수민족의 하나로 꼽힌다.
목차
명칭
일본어로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민족명 키르기즈는, 러시아어에 의한 민족명Киргиз(Kirgiz)에 유래한다.이것에 대해, 키르기즈어에 의한 자칭은 크루그즈(Кыргыз, Kyrgyz)라고 한다.제정 시대의 러시아인은 카자흐인을 잘못하고 키르기즈라고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본래의 키르기즈는 컬러・키르기즈( 「검은 키르기즈인」의 뜻)로 불리고 있었다.
소련 시대에 키르기즈와 타칭 되게 되어, 대외적으로는"Kirghiz"라고 표기되었다.1990년에 키르기즈 공화국이 주권 선언을 한 후, 키르기즈어에 준한"Kyrgyz"의 표기가 국제적으로 사용되게 된다.일본의 학계에서도, 「키르기즈」는 타칭 혹은 오칭이며, 「크루그즈」라고 표기하는 것이 정당으로 되어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키르기즈」를 소리 찍은 길이길사를 키르기즈 공화국의 키르기즈를 가리키는데 이용해 「크루그즈」를 소리 찍은 가이극자를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의 키르기즈를 가리키는 민족명으로서 구분하여 사용한다.
역사
이니세이・키르기즈
『사기』등의 고대 중국의 역사서에 이름을 볼 수 있는 견고(건곤)가, 키르기즈의 이름으로 기록된 최초의 민족 집단이라고 생각되고 있다.그들은 남 시베리아의 이니세이 카와카미 유역에서 유목 생활을 실시해, 흉노에게 복속하고 있었다.그 후, 같은 지역에 있던 민족으로서 기록되는 계골(연습개) 안개 바늘 키르기즈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당초 그들의 풍모는, 키가 크고, 흰 피부를 가져, 푸른 눈을 가지면 기록되고 있었다.이러한 일로부터, 키르기즈인의 조상은, 코카소이드이다고 한다.(다만, 현재의 키르기즈인과는 관련성이 있을지 어떨지는 미상이다).
당대에는 힐알사(간신히 해)로서 기록되어 초돌궐(테르크), 후회골(위구르)에 복속하고 있었지만, 840년에 궐기해 이니세이강에서 남하해, 회골을 멸했다.그러나, 회골에 대신해 몽골 고원을 지배하지 못하고, 그 후도 키르기즈의 이름을 가지는 집단은 이니세이 상류역에 머문 것 같다.13 세기에 틴기스・캔이 몽골 제국을 건물루와 이것에 복속했다.
텐잔 키르기즈
현재의 키르기즈인은 천산 산맥, 파미르・아라이 방면으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이 텐잔 키르기즈와 고대에 이니세이강유역에 할거 한 이니세이・키르기즈와의 사이에 관계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지금까지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그 중에 S・아브람존은 이 문제에 대해 3개의 가설이 있다고 지적했다.
- 페룬슈탐의 설 이니세이・키르기즈가 10 세기 이상의 세월, 기파에도 건너는 민족 이동을 거쳐 텐잔 지방에 이주해 왔다.
- 비츄린, 와리하노후, 아리스토후, 마르그란의 설-키르기즈인은 고대로부터도라고도와 텐잔 지방에 살고 있었다.
- 페트로후의 설 이르티슈강에 있던 키마크・키르기즈 혹은 동부 키프체크가 이니세이・키르기즈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해 키르기즈의 이름을 씌워, 텐잔 지방에 이주했다.
어쨌든, 텐잔 키르기즈는 이 후 몽골 제국의 지배하에서 몽골적 요소를 받아 들여 중앙 아시아에 진출 후의 카자흐・노가이적 요소, 우즈베크, 타지크라고 하는 중앙 아시아적 요소를 받아 그 다음에 현재의 키르기즈 인형성에 이른다.
중앙 아시아의 키르기즈인은, 17 세기무렵, 근린의 민족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교에 개종 했지만, 오이라트가 세운 즐갈 제국에 복속했다.즐갈의 붕괴 후는, 최종적으로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이니세이강유역에 남은 키르기즈인은, 현재의 하카스인등의 조상이 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러시아 혁명 후
키르기즈인이 독립한 민족으로서 하나의 자치체를 만든 것은, 러시아 혁명 후의 1924년, 러시아・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사회주의 공화국의 관할하에서 컬러・키르기즈 자치주가 놓여졌던 것에 시작된다.그 후, 키르기즈 자치 소련 사회주의 공화국(1926년), 키르기즈・소련 사회주의 공화국(1936년)이 소련의 구성국으로서이지만 지어졌다.
독립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 키르기즈인은 키르기스스탄 공화국을 건국해, CIS(독립국가 공동체)에 참가, 국제연합에도 가맹해(1992년), 명실 공히 독립을 완수했다.1993년에는 현재의 키르기즈 공화국으로 개칭한다.
문화
- 언어와 종교
테르크제어의 하나, 키르기즈말을 이야기해, 대부분이 이슬람교(이슬람교도)이다.종파는 수나파이지만, 이슬람화했던 시기가 늦기 때문에, 샤머니즘등의 자연 신앙의 요소도 잔존하고 있다.생업은 원래는 거의 유목이었지만, 1930년대에 소련에 의해서 정주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결과, 현재는 대부분이 농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중국흑타츠에성 부유현의 키르기즈인은, 샤머니즘과 라마 불교를 신앙하고 있다.다만, 이 집단은 엄밀하게는, 러시아 연방의 민족으로 말하는 곳(중)의 하카스인에 가까운 민족 집단이다.언어(부유 키르기즈어), 습속과도 중앙 아시아의 키르기즈인보다, 오히려 하카스인에 가깝다.
- 문화유산
서사시 「마나스」가 키르기즈 민족의 문화유산으로서 잘 알려져 있다.
- 전설
재경 키르기즈 대사관의 개관 세레머니에 있어서의 마츠미야 세무관의 인사보다.
키르기즈의 분들의 사이에서는 「먼 옛날, 키르기즈인과 일본인이 형제로,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키르기즈인이 되어,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은 동쪽으로 건너 일본인이 되었다.」라고 해진다고 듣고 있어 또 키르기즈인과 일본인은 얼굴이 꼭 닮다라고도 잘 듣고 있습니다.[1]
유전적 계보
황색인종을 기본으로서 약간 코카소이드의 특징도 있는 키르기즈인이지만, Y염색체하 프로 그룹은 코카소이드 유래의 R1a가 63.5%의 고빈도로 볼 수 있는[2].
저명인
- 이사합극배극·목농아길(1902-1949) - 1944년 6월에 민족군을 창립, 총사령을 맡았다.
- 주소보·□□의-가수
- 틴기스・아이트마트후 - 작가
참고 자료
- 호마사오・오카다영홍 「민족의 세계사 4 중앙 유라시아의 세계」(야마카와 출판사, 1996년 ISBN 4634440407)
각주
- ^재경 키르기즈 대사관의 개관 외무성 홈 페이지
- ^ Wells, Spencer et al. 2001, The Eurasian Heartland: A continental perspective on Y-chromosome diversity
관련 항목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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