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 3세(카스티랴왕)
엔리케 3세(스페인어:Enrique III, 1379년 10월 4일- 1406년 12월 25일)는, 카스티랴 왕국(트라스타마라아침)의 국왕(재위:1390년- 1406년).「병약왕」(el Doliente)로 불린다.카스티랴왕후안 1세와 그 왕비인 아라곤왕페드로 4세의 왕녀 레오노르의 아들.아라곤왕페르난도 1세는 남동생이다.
생애
엔리케는 카스티랴 왕국의 수도에서 만난 부루고스로 태어나 왕태자가 되었다(왕태자로서 아스트리아스공의 칭호를 얻은 최초의 인물이다).그리고 1390년, 부왕의 사망에 의해서 11세에 왕위를 이어받아, 14세부터 친정을 시작했다.그는 국왕 고문 회의에 하급 귀족을 등용해 왕권을 강화해, 한층 더 도시의 통제를 위해서 코레히드르(국왕 대관)를 파견했다.
엔리케 3세는, 1400년에 해적선을 중심으로 하는 함대를 파병해 북아프리카의 테트원을 파괴하는 등, 잉글랜드에 대해서 몇 번인가 승리를 거두었다.또 1402년에는 프랑스의 탐험가 쟌・드・베탄크르를 파견해, 카나리아 제도의 식민을 시작했다.한층 더 티무르에 대해서도 사자로서 루이・곤살레스・데・쿠라비호를 파견하고 있다.
1388년에 엔리케는 런 캐스터-공존・오브・곤트의 딸(아가씨) 캐서린(스페인어명 카타리나)과 결혼했다.카타리나의 어머니 콘스탄사는 페드로 1세의 딸(아가씨)이며, 이 혼인에 의해서 트라스타마라아침의 정통성이 강화되었다.(트라스타마라아침의 선조인 할아버지 엔리케 2세는 베드로 1세의 서형으로, 적자의 왕인 이모남동생 페드로 1세를 넘어뜨리고 왕위에 들고 있었다.)
1406년, 엔리케 3세는 토레도에서 27세에 요절했다.왕위는 카타리나의 사이에도 받은 아스트리아스공후안이 후안 2세로서 이어받았지만, 2세에 못 미쳤기 때문에 카타리나가 섭정이 되었다.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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