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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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사(리 도록 해, 영어:barber)란, 머리카락을 잘라 정돈하는 등의 이용을 실시하는 일을 맡는 직종이다.
기원 전에 있어도 현대의 도시 문명사회에 대해도,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 외에, 영구 웨이브, 네일 아트, 화장, 머리 염색, 마사지 등은, 이용사의 업무 범위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적지 않았다(물론, 시대・지역등에 의해서 크게 다르다)가, 현대로는 이러한 각종 서비스에 에스테틱이 더해졌다.
목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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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이용은 선사시대로부터 있어, 고고 유물로서는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기원 전 3500년경의 면도칼이 발견되고 있는[언제? ][어디?]。또, 「구약 성서」 「에제키엘서」에도 이용이 쓰여져 있다.
고대
석가 십대제자의 한 사람으로 있는 우파리는, 출가전은 석가족의 이발사였던 것이 알려져 있다.
마케도니아인(아렉산트로스 3세(대왕) 시)에 정복되기 전의 고대그리스로는, 주인의 이발이나, 두발, 자, 지의 조등의 스타일을 정돈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발은, 고대그리스의 식민지에서 당시의 기술적 최첨단 지역에서 만난 시칠리아섬으로부터 기원 전 296년에 공화정로마에 건너, 머지 않아 인기를 얻었다.고대 로마의 자유 시민은 자를 깎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한편, 남성 노예는 자를 늘리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아침에 대중탕과 함께 이발사를 방문하고 몸을 바로잡는 것은 습관이 되어, 또, 청년이 태어나고 처음으로 자를 깎는 것(tonsura)는 청년이라고 보여지기 위한 통과의례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로마인 이발사중에는 유복하게 되어 돋보인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게 말한 사람은 점포 앞대로에 스툴(의자)을 늘어놓아 쿠드란스(당시의 동전, 통화단위로 쿼터-)의 요금으로 자를 깎고 있었다.면도칼에 의한 삭발이 싫은 손님에게는 탈모도 갔다.
기원 전 54년, 공화정로마의 가이우스・유리우스・Caesar가 군을 인솔해 그레이트 브리티언섬에 상륙했을 때에는, 선주민인 방어 톤인은 입술의 상부 이외의 얼굴의 자를 깎고 있었다.
잉글랜드에서는 역사적으로, 면도(삭발, 자・발에 관련되지 않고)는 법률로 의무 지워지고 있었다.
중세 이후
잉글랜드에 있고, 노르망디공기욤 2세(잉글랜드왕윌리엄 1세)에 의한 노르만・부처의 입 에스트(노르만 정복)의 시대에는, 적측이며 마지막 앵글로・색슨계 잉글랜드왕이 된 할로 루도 2세와 그 하인은 악자(턱수염)를 깎고 있었다.
중세의 구미제국으로는 이용사는 외과적 처치를 실시하는 외과의, 치과 의사이기도 했다.
그 무렵, 의학은 내과학 주류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상의 처치나 사지의 절단등에 이르기까지, 이용사가 이것을 실시하고 있었다.「사혈(노린내 없애기)」, 흡각법, 힐 요법, 관장, 발치를 실시했다.그 때문에, 그들은"barber surgeon(이발・외과의)"로 불려 1094년에 최초의 조합을 만들었다.
잉글랜드에 있어서의 이용사는, 잉글랜드왕에드워드 4세에 의해서 1462년, 길드(직업 조합)로서 법정화 되어 외과의는 그 30년 후에 길드가 생겼지만, 1540년에 헨리-8세에 의해,"The United Barber Surgeons Company"(이발・외과의 조합)로서 이루어졌다.엘리자베스 1세시에는 「생활이 활발하지 않은 것의 증명이니까」라고 하는 이유에 의해서 2주일 이상자를 늘린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있었다.xxxx년의 아일랜드에서는, 영국인과 분별하기 위해서 입으로부터 위의 털을 전부 깎게 하고 있어 이 법률은 그 앞으로 200년간 계속 되었다.[요점 출전]
17 - 18 세기의 러시아 황제 피여틀 1세(피여틀 대제)는, 1699년, 서양화 개혁의 시작을 나타낼 수 있도록, 러시아 정교상의 습관에 거역해 콧수염・턱수염을 깎아 떨어뜨리도록(듯이) 전국민에 강요해, 위반자에게는 신분상의 귀비의 구별없이 과세했다.러시아의 민중 판화인 르보크에도 이 모습은 그려져 있다.
조지 1세시의 1745년, 외과의는 이용과 나누는 것이 법정되었다.
런던의 외과의의 조합은 조지 3세시의 1800년에 잉글랜드 왕립 외과의사회가 되었다.
일본의 이용
일본어로는, 옛날에는 쪽진 머리라고 말해, 에도시대부터 메이지 시대에 있어서는 「이발업 종사자」의 총칭이었다.그 후도 전통적 일본식 머리 모양의 이용과 이용사에 한해서는 「쪽진 머리」의 호칭은 사어는 되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또, 「쪽진 머리마루(머리를 쪽짐 어디)」라고 하는 자신의 가게를 가지는 사람은 이발소라고도 불렸지만, 「이발소」는 이발업 종사자와 그 가게의 속칭이 되어 현재 더 통용되고 있다.또, 역사의 곡이나 배우의 만을 땋아 올리는 직업은 배우나 씨름꾼의 머리를 틀어주로 불린다.
현대 일본의 이용사법으로는 「이용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정의되고 있다(이용사법1조의 2 제 2항).현대 일본에 있어서의 국가 자격에 대해서는 사토미용사를 참조.이용사의 정의나 자격, 이용소의 설치에 대해서는, 이용사법에 따라 정해져 있다.동법에 위반하는 영업이나 이용 행위에 대해서는 벌칙이 있다.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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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구별 없고, 면도칼과 거기에 필적하는 칼날을 빠뜨릴 수 없는 지역이 많다.가위(가위)의 보급 후는 이것이 주된 도구가 되어, 면도칼은 조금 보조적인 도구로 바뀌었다.바리캉이 보급한 지역에서는 이것도 많이 이용된다.머리카락은 차치하고, 배냇 머리의 손질에 칼날은 아니고 끈을 사용하는(끈으로 털을 사이에 두어 뽑아 낸다) 지역도 적지 않다.빗도 많은 경우는 빠뜨릴 수 없는 도구가 되고 있다.
특기 사항
- 영업중을 나타내는 「사인 폴」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별항 「사인 폴」을 참조.
- 상기와 같이, 역사적으로 두발이나 자를 깎는 문화는 임의 행위가 아니고, 각각의 민족・문화권・국가등의 법(규칙, 교의, 법률)이나 신앙등에 의하는 곳(중)이 있다.예를 들면, 전혀 잉글랜드에서는 일요일에 털이나 조를 자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되고 있었다.[요점 출전]
- 국공 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측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샹하이로부터 홍콩으로 도망친 이용사들은, 전쟁 전의 샹하이의 유행을 몸에 익히고 있던 것으로부터, 홍콩의 사람들로부터 최고의 이용사라고 평가되게 되어, 1990년대까지 그러한 브랜드성이 유지되고 있었다.[요점 출전]
- 이발관 피쉬(학명:Johnrandallia nigrirostris, 영어:barberfish)
- 스즈키눈쵸우쵸우워과의 생선으로, 태평양 동부로 분포한다.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호칭은 눈에 띄지 않지만, 영어명에 준해 「이발관 피쉬」라고 불리는 것 외에 스페인어명 혹은 영어명의 의역으로 「이발소어」라고도 불려 손님의 몸을 깨끗이 해 돌려 보내는 「이발소(이용사)」에 비 얻을 수 있기에 어울린 생태를 가지고 있다.자기보다 큰 해 서동물(대형의 어류나 갑각류, 바다거북 등등)의 체표면이나 입안에 도착한 기생충이나 더러워져(먹은 찌꺼기, 낡은 조직, 상흔의 조직등)를 먹어 깨끗이 청소한다.청소를 해 주기를 바라는 동물은 이발관 피쉬의 서식 수역에 스스로 향해, 이발관 피쉬가 작업을 하기 쉬운 해저 근처를 빙글빙글 헤엄쳐 돌거나 해저에 머물며 보낸다.
관련하는 창작 작품
각주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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