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제노부미츠
간제노부미츠(관노부 봐 개, 구자체:관세신광, 에이쿄 7년(1435년) 또는 호우토쿠 2년(1450년) -에이쇼 13년 7월 7일(1516년 8월 5일))은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의 옛 예술제사(노가꾸사), 옛 예술제(능) 작자.간제 고지로신광과도 표기된다.
목차
생애
제아미의 생음 아미의 제7자로서 태어난다(생년에 대해서는 종래 1435년이라고 하고 있었지만, 근년표장등의 연구에 의해 1450년설이 유력하게 되고 있어 이 항으로는 양설을 병기 했다).어쨌든 신광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칸제좌의 주도권은 제아미 부자로부터 소리 아미가로 이행 있어, 그의 생애는 그 소리 아미 직계의 대부들을 보좌하는 것에 바칠 수 있게 된다.
소리 아미의 제・미사부로에 사사 해, 초북분을 근무하고 있었다.경서주린이 쓴 「간제 고지로신인화상찬」이나 「4좌 배우 목록」등에 의하면, 15세 때 고하나조노 천황의 어전에서의 옛 예술제에 참가해, 천황 선을 동석한 아시카가의정의 손첨가로 하사할 수 있다고 하는 영예를 받았다고 해, 일찍부터 그 재능을 나타내고 있었다.
방류의 잡방이라고 하는 몸이었지만, 때의 칸제 대부 칸제 사부로지중이 유소였기 때문에, 그것을 돕는 형태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전술의 「4좌 배우 목록」은 「난무도의 명인」, 또 모든 일에 대해 암 나무곳 이루어, 라고 평가하고 있어 잡방이라고 하는 테두리에 사로 잡히지 않고, 배우로서도 우수했던 것이 엿볼 수 있다.일로 그의 자손에게 와키분의 배우가 많았던 일로부터, 와키의 명인이었다고도 말한다( 「4좌 배우 목록」의 기술을 신용하지 않는 설도 있다).
후술과 같이 능작자로서 활동한 것 외, 과거의 사장곡의 보존・계승에도 신경써, 2백 남짓의 작품을 「청색 표지책」이라고 불리는 형태로 정리했다고 전해진다.
노경에 이르기까지 대부의 보좌역으로서 제일선에서 활약해, 「권수」의 칭호를 받았다.난세를 넘어 소리 아미가, 나아가서는 칸세이류가 돋보이는 주춧돌을 만든 인물로서 높게 평가된다.또 만년에 쓰여진 「간제 고지로신인화상찬」으로는 그 생애와 함께, 칸제가의 출자가 자세하게 말해져 근대에 이르기까지 칸제가를 말하는데 있어서의 기초 자료로서 인지되고 있었다.
아들에게 쵸 슌, 노부시게, 전 보조자가 있다.
능작자로서
많은 작품을 썼다.신광의 작품은, 대개 화려하고 알기 쉽고 극적 전개 로 가득 차고 있다.「유현」을 때에 과잉 날것으로에 추구한 제아미・원아의 작품과는 대조적으로, 신광의 작품은, 쇼적 요소, 동시대에 말하는「풍류(후리우)」를 많이 도입한 화려한 작품이 많다.이것은, 오닌의 란을 경험하는 신광의 시대는, 상류 무가, 문신의 백업을 받고 있던 제아미 시대에 비해, 그러한 층의 후원이 줄어 들어, 지방 흥행도 많아, 유현보다 스펙터클성이 요구되었기 때문에라고 하고 있다.이 예풍은 아들장슌에 계승해져 그도 또 능작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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