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7일 목요일

오토・휄디난도・폰・트라운

오토・휄디난도・폰・트라운

오토・휄디난도・폰・트라운(Otto Ferdinand Graf von Abensperg und Traun, 1677년 8월 27일- 1748년 2월 18일)은, 오스트리아귀족, 군인.계위는 백작, 원수.금 양모 기사。성은 트라온의 표기도.

개요

헝가리쇼프론의 출신.거대해 하레 대학에서 배운 트라운은, 1693년부터 브랑 덴 부루크 선제후군에 들어가 대동맹전쟁에 참가, 나뮤르 공략 등 남네 델 랜트로의 싸워 종군 했다.그 후 오스트리아군으로 변해 스페인 계승 전쟁에 참가, 이탈리아, 라인강 방면을 거치고, 1709년에는 그이드・폰・슈타렌베르크부관으로서 스페인에 있어서의 싸워 종군, 전쟁 말기에는 또 이탈리아로 돌아왔다.게다가 4개국 동맹 전쟁으로 시칠리아의 싸움에 참가, 후란카비라의 싸움으로는 중상을 입었다.전쟁 후는 멧시나 총독을 맡았다.

1733년부터의 폴란드 계승 전쟁으로 오스트리아는, 앞의 전쟁으로 손에 넣은 나폴리, 시칠리아를 잃었지만, 트라운은 이 전쟁에 대해 발휘한 교묘한 지휘로 평가되었다.한 번 헝가리에 파견되었지만, 폴란드 계승 전쟁의 종료후 밀라노 총독을 맡았다.

1740년, 컬 6세가 죽고, 딸(아가씨) 마리아・텔레 차아가 즉위 한 것으로부터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이 시작되면, 트라운은 어려운 상황으로 오스트리아령의 이탈리아제영역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본국 자체가 위험했기(위해)때문에 으로부터 온전히 지원을 얻을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한 번 프랑스, 스페인 측에 붙어 있던 사르데이냐 왕국이 오스트리아 측에 전업해, 영국 해군의 협력에 의해 스페인군의 행동이 자주 견제되었기 때문에, 유지할 수 있었다.캄포・산트의 싸움으로는 스페인에 져 우수리의 것의, 자군보다 큰 손해를 상대에게 주어 결국 후퇴 시키는 것에 성공했다.요즘에는 북쪽의 전황이 호전되고 있어 본국으로부터 증원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후 이탈리아에서 뽑아 내진 트라운은, 급사한 르트비히・안드레이아스・폰・케이펜휴라의 뒤를 받아 컬・알렉산더・폰・로트린겐의 후견역이 되어, 전년부터 계속해 프랑스에 대해 공세하러 나와 로트린겐공령의 탈환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 이것을 본 프리드리히 2세(대왕)가 베이멘에 침공했기 때문에, 계획은 급거 중지가 되어, 트라운은 되돌아와 Pruisen의 격퇴를 명령받았다.트라운은 이 싸움으로 매우 뛰어난 용병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했다.

프랑스군의 추격을 받지 않았던 것도 있어 신속히 베이멘에 도착한 트라운은, 강력한 Pruisen군에 대해서는 감히 결전을 요구하는 일 없이, 이것을 피해 초토 전술을 취해 Pruisen군에 식량을 주지 않게 하면서, 그 후방 연락선을 덮치고 보급을 끊은 후, 주로 헝가리 및 군정 국경 지대의 군사로부터 되는 소규모 부대에 의한 게릴라적 기습을 수시로 가서 Pruisen군의 소모를 강요했다.이러한 결과, Pruisen군은 사기가 붕괴, 1만을 아득하게 넘는 탈주자를 내 퇴각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트라운은 역시 결전을 피하면서 추격을 실시하고 전과를 확대했다.후에 대왕을 하고, 「 나는 이 때 트라운에 전술의 무엇인인지를 배웠다」라고 말하게 했을 정도에서 만났다.

이 후 트라운은 라인 방면으로 보내져 와야 할 프란츠・스테판의 대관을 위해서 프랑크푸르트를 제압, 경비했다.그리고 1748년 2월 18일, 헤르만슈탓트(현재의 루마니아, 시비우)로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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