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한창
호한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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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 |
2대 황제 | |
국호 | 대우려 |
왕조 | 호조 |
재위 기간 | 1400년- 1407년 |
미야코노죠 | 사이토(현타인호아) |
성・휘 | 호한창 |
생년 | ? |
부 | 호계□ |
모 | 태자황후친씨은영 |
황후 | 헌가황후친씨 |
원호 | 소성 1401년- 1402년 개대 1403년- 1407년 |
호한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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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표기 | |
쿠크・굿: | HoHan Thuong |
한자・츄놈: | 호한창 |
북부 발음: | 호-・한・투 온 |
음독: | 새기지 않는 그렇게 |
호한창(새기지 않는 그렇게,? - 1407년)은, 베트남호조의 제2대 황제(재위:1400년- 1407년).
초대 황제・호계□의 아이.아버지는 베트남의 왕조의 가장자리척 한편 중신이었지만, 찬탈과 숙청을 반복한 다음 호조를 창설했기 때문에, 주위로부터의 증오를 사고 있었다.이 때문에, 반란 분자에 대한 온건책으로서 재위 1년에 베트남의 왕조의 황족을 어머니로 하는 호한창이 황위를 양위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실권은 아버지가 상황으로서 장악 있어, 그는 아버지의 부하 무장과 같이 다루어지고 있다.1402년부터는 체파 왕국에 쳐들어가 승리했다.
그러나 남하정책을 회책하는 명의 영락제가 베트남의 왕조의 복권과 그 황족인 진나라시대의 연호의 옹립을 요구해, 호계□와 호한창은 이것을 거절해 진나라시대의 연호를 죽인다고 하는 실책을 범했다.이것이 영락제의 베트남 침공의 구실을 주게 되어, 1406년(영락 4년) 4월에 명의 대군이 침공하면(명호전쟁, 아키라・대우려 전쟁), 베트남의 왕조 시대부터의 중신의 대부분이 호계□의 숙청에 대한 불만, 호한창의 통솔력이 없음등에서 명군에 배반 해 베트남은 명의 지배하에 떨어진( 제4차북속시기, 1407년-1427년).
호한창은 아버지와 함께 남방으로 피했지만, 1407년 5월 11일에 기라하이코우의 땅에서 명군에 잡힌[1].동년 9월에는 수도(난징)에 보내져 투옥되어 이윽고 살해된 것 같은[2].여기에 호조는 멸망 했다.
각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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