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5일 목요일

미리보이・아슈넬

미리보이・아슈넬

미리보이・아슈넬(크로아티아어:Milivoj Asner, 1913년 4월 2일- 2011년 6월 14일)은, 크로아티아 서부의 경찰 소장으로 동국이 크로아티아 독립국으로서 나치스・독일과 동맹 관계에 있던 제2차 세계대전시에 있어서의 민족 박해의 용의를 갖게 하고 있던 인물.수십만인의 세르비아인, 유태인로마에 대한 박해의 혐의를 두고 있던 인물.오스트리아에 망명하고 있었다.

목차

인물

1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에 오스트리아에 도망해, 게올게・아슈넬(George Aschner)을 자칭하고 있다.2005년, 크로아티아는 아슈넬을, 1941년부터 1942년포제가(Pozega)에 있어서의 인도에 대한 범죄전쟁 범죄로 고소한[1].2006년 2월, 오스트리아의 재판소는 아슈넬을 체포할지 곧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오스트리아 당국은 그 후 곧, 아슈넬이 오스트리아 국적을 보관 유지하고 있는 것을 이유로서 아슈넬을 크로아티아에 인도할 수 없으면 결정한[1].그렇지만, 그 후, 아슈넬이 거주하는 케룬텐주의 사법당국에 의한 조사에 의해서, 아슈넬은 오스트리아 국적을 삭제된다고 했다.

아슈넬은 국제 형사 경찰 기구의 추적 리스트에 실리고 있어[2], 또 사이먼・위젠타르・센터에 의해서 4번째에 중요한 나치 전범으로 지정되어 있는[3]. 2008년 6월, 아슈넬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아슈넬이 쿠라겐후르트로 열린 EURO2008의 크로아티아 대표의 시합의 응원하러 와있던 것을 저널리스트에 의해서 발견된[4].이것은 즉시 크로아티아 정부에 의한 재차의 인도 요구로 연결된[5].그렇지만, 케룬텐 주지사로 극우 정치가 옐크・하이다는 아슈넬의 가족을 칭찬한 데다가, 「아슈넬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우리와 함께 평온에 살아 왔다.그는 그날 밤년을 우리와 함께 보낼 권리가 있다」라고 이야기했다.이것은 한층 더 비판을 모아 사이먼・위젠타르・센터의 에프 라임・트로후(Efraim Zuroff)는 「하이다의 시점은 오스트리아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것이어, 나치 전범에 대한 동조성이 매우 높은 확고한 집단이 있다」라고 한[1].

2008년 6월 19일, 아슈넬은 세르비아인 등에 대하는 추방 정책에 관련되고 있던 것을 인정한 데다가, 그들은 일반적으로 믿을 수 있고 있는 멸종 수용소에 보내진 것은 아니고, 그들의 본래의 모국에 추방되었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아슈넬은 자신의 결백을 확신해, 크로아티아에서 재판을 받는 것을 바란다, 로 하는 한편으로, 건강에는 문제가 있다고도 이야기했다.같은 주에 행해진 시험으로는, 아슈넬은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그러나, 트로후는 아슈넬이 건강 상태를 속일까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한[1].

2011년 6월 14일에 오스트리아의 쿠라겐후르트로 사망해 있던 것이, 후일, 동국의 보도 기관에 의해 밝혀진[6].

참고 문헌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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