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5일 목요일

오펠

오펠

오펠의 엠블럼과 표어 「우리들은 자동차와 함께 산다」

오펠(Opel, 정식 회사명:아담・오펠, Adam Opel AG[1] )은, 독일자동차 메이커이다.회사 설립은 1863년이며, 헷센주 다룸슈탓트 행정 관할구역 성장=게이라우군 룽세르스하임을 본거지로 하고 있다.

1929년 이후는 GM社(GM)의100% 자회사가 되어, 영국을 거점으로 하는 보크스호르와 함께 GM의 유비즈니스를 담당해 왔다.2017년, PSA・푸조 시트로엥에 의한 매수가 보도되어 동년 3월 6일, 정식으로 매수가 발표되었다.

목차

개요

창업자는 아담・오펠(1837년-1895년).미싱, 자전거의 제조를 거치고, 창업자 사후, 5명의 아들들에 의해서 1899년에 자동차 제조를 개시.룻트만이나 프랑스의 다라크차를 라이센스 생산 해 기술을 습득해, 1902년에 독자 개발차를 완성했다(한편으로 모터 사이클도 제조했지만, 후년에 사업을 NSU에 매각하고 있다).일찍부터 풀 라인화를 진행시켜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의 시점에서, 「드크트르바겐」이라고 불리는 소형차로부터, 메르세데스에게 비견 하는 고급차・고성능 레이싱 카를 제조하는 유력 메이커였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대량생산형의 대중차 「라우후프롯슈」(통칭으로 「청개구리」의 뜻.시트로엥으로부터 동사의 선행 모델 「5 CV」에 설계가 아주 비슷한다고 호소할 수 있었다)등의 성공으로, 당시의 독일 국내 최대기업 자동차 메이커의 지위를 확실한 것으로 했다.1920년대 후기에는, 로켓 동력 자동차에 의한 속도 기록 달성의 시도도 가고 있다.

그러나, 불황하에서 독일에의 미국 자본 유입이 격화하면, 1929년에는 유럽 진출 공세를 강하게 하고 있던 GM자본을 받아 들여 1931년에는 GM의 완전 자회사가 되었다.이후의 중급차이상의 제품에는 미국적인 설계나 디자인의 요소가 현저해져, 1930년대의 독일에 있고는 비교적 진행된 기술을 도입하는 메이커가 되었다.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GM는 나치스의 압력으로 권리를 방폐해, 군수 전용으로 중형 트럭 「급습」등을 제조하고 있었지만, 1948년에는 GM가 경영권을 회복했다.

제2차 대전 후도, 트럭과 소형・중급 승용차의 생산으로 독일 시장에서의 일정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지만, 폭스바겐・타입 1(통칭 비틀)에 경합 하는 소형 대중차를 오랫동안 출현시키지 않았었다.그러나 1962년, 신설의 보쿰 공장 생산으로 신형 「사관 후보생( 「사관후보생」.전쟁 전에 있던 명칭의 부활)」를 등장시켜, 비틀과의 판매 경쟁을 전개했다.이 사관 후보생은, FR의 극히 상식적인 설계면서, 적당한 가격이나 넓은 실내와 트렁크, 신뢰성의 높이로 인기를 얻었다.이후, 오펠은 소형차 사관 후보생으로부터 중형차 「레코르트」라고 게다가 급 사양 「코모드레」, 대형 고급차 「애드미럴」/「디프로마트」까지를 껴안는 풀 라인 메이커가 되었다.

1970년대, 모회사 GM는 「하나의 플랫폼으로부터, 온 세상에서 판매 할 수 있는 차종을 설계한다」 「글로벌 카(세계 전략차) 구상」을 전개, "T카"로서 구상된 제3세대의 사관 후보생(통칭:사관 후보생 C)에게는 의자□・제미니나 「시보레・시벳트(미국브라질에서는 사양이 다르다)」등의 파생 차종이 등장했다.

1980년대, 일본의 미디어에 「일본차의 자객」이라고 인기있던 미국제 소형차 시보레・캐바리에등의 베이스[2]차가 된 것이, 1983년 「글로벌 카 구상」의 제2탄"J카"로서 등장한 아스코나의 제3세대(아스코나 C)이며, 이 일본판은 의자□・아스카이다.영국에서는, 오펠차의 일부가, 같은 GM의 완전 자회사인 보크스호르브랜드명으로 판매되고 있다.

2009년 모회사인 GM는 경영파탄, 동년 6월 1일에 연방 도산법 제 11장의 적용을 신청했다.이에 앞서 오펠의 매각이 검토되고 있어 피아트 등 몇개의 후보가 오른 후, 동년 5월 30일에는 캐나다의 자동차 부품 회사의 대기업 마그나・인터내셔널이나 러시아 저축은행(즈베르반크)등이 참가하는 기업연합에 과반수주(발행필 주식의55%)가 동년중에 매각되는 것이 결정된[3].그러나, 동년 11월에 GM는 오펠 매각의 결정을 철회해, 자력 재건을 목표로 하는 것을 발표했다.이것에 대해, 러시아의 옷의 안감-밀・푸친 수상은 「상대를 바보취급 한 태도」 「이러한 방식을 미리 고려해야 한다.이것은 교훈이다」라고 GM를 통렬하게 비판한[4].

2017년 3월 6일, PSA가 GM로부터 동사 자매 브랜드의 나 구두창이나 유럽 전개의 금융 사업을 포함해 합계 22억 유로( 약 2,600억엔)로 매수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에서의 판매

제2차 세계대전전의 시기에 있고는 1927년오사카시 타이쇼구에 공장과 함께 설립된 「일본 제너럴・모터스」가 판매를 행했다.그러나 같은 대학전의 발발에 수반해 1941년에 폐쇄가 되었다.전후는 1950년대부터 토호 모터스가 일본 총대리점이 되어, 수입, 판매를 했다.1960년대에는 일본차에 대한 상품력이 저하, 한층 더 배기가스 규제에의 부적합으로부터 1976년말로서 수입이 중단되었다.

그 후도 토호 모터스는 수입권을 보관 유지하고 있어, 1983년 만타의 수입 판매를 재개했다.계속 되어 아스코나, 레코르트, 상원 의원, 사관 후보생, 코르사(일본명은 다르다)등을 도입했지만, 모두 소수 한정범위를 이용한 수입이며, 이 시기 동사가 수입 판매 한 차종에 운수성의 형식 인정을 얻고 있던 것은 없었다.1989년부터는 당시 GM그룹인 의자□자동차도 수입 판매를 개시했지만, 취급 차종은 벡트라, 오메가, 상원 의원에게 한정되어 있었다.

1993년 수입권은 야나세로 이행해, 토호 모터스와 의자□에 의한 수입 판매는 종료했다.야나세는 1992년말로서 폭스바겐, 아우디의 수입, 판매로부터 철퇴하고 있어, 거기에 대신해 오펠의 판매를 실시하는 모습이었다.판매는 벡트라, 오메가, 아스트라로부터 개시되어 1994년에는 카리브라가 발매되었다.1995년에는, 컴팩트 카비타(현지명 코르사)」가 발매되어 에어백이나 ABS등을 장비하면서도, 수입차로서는 저가격의 150만엔대로부터 판매되고 인기를 얻었다.또 동년에는 자동차 메이커로서 처음으로 일본어의 공식 웹 사이트(www.opel.co.jp)를 개설했다(닛산 자동차가 오펠에 계속 되었다).1996년에는 오펠차의 연간 등록 대수는 3만 8,339대에 이르고 있었지만, 고장이 많음이 유저에게 부정적으로 보이는 등 판매 대수는 급감, 1999년에는 등록 대수 2만대 미만이 된[5].

2000년에 수입권은 「일본 GM社」에 이관되었다.2001년, GM는 일본에서의 직영 딜러망 「GM오토 월드」를 설립, 오펠의 판매를 둘러싸 야나세와의 사이에 확집이 생겼다.GM는, 타이에서 현지 생산되고 있는 자피라를 당시의 후지 중공업(후의 SUBARU)에 공급.타이제 자피라는 「스바루・트라비크」의 명칭으로, 야나세에서 판매되는 자피라보다 저가격으로 판매되었다.야나세는 오펠로부터 타사 브랜드에 판매의 힘을 옮겨, 오펠 취급점을 삭감했다.한편의 일본 GM는 판매망의 확립에 실패해, 결과적으로 오펠의 판매 대수는 격감했다.일본 GM는 저가격 모델인 비타의 수입을 중지해, 지금까지의 저가격 노선을 변경해 가격 인상했지만, 메르세데스BMW에 가격대가 가까워진 것에 오펠의 판매 대수는 한층 더 침체.고장이 많이 수리 비용도 비교적 비싼 것, 거기에 따른 중고차 시장에서의 인기 침체와 리세일 밸류의 낮음, 또 때에의 수입차붐에 의해 보는 눈이 있던 일본의 유저로부터 「다른 독일차와 비교해 수수하고, 신뢰성이나 고급감도 뒤떨어져 프리미엄성에도 빠지는 브랜드」라고 인지되어 버린 것등에서, 오펠의 일본에서의 판매는 격감했다.

브랜드 가치가 붕괴해, 이미 일본에서의 오펠차판매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져, 더해 모회사인 GM의 경영 악화도 심각화한 것으로부터, GM아시아・태평양・재팬(GMAPJ)은 2006년 5월 8일에, 재고 마지막으로 오펠차 모든 신차판매를 종료한다고 발표한[6].GMAPJ는 「오펠은 GM의 유럽 지구 한정 브랜드로 해서 살아 남아 간다」라고 발표했다.

등록 대수

1983년부터 2007년의 일본에 있어서의 오펠 신차등록 대수의 추이는 이하와 같다.

  • 1983년- 24대
  • 1984년- 70대
  • 1985년- 111대
  • 1986년- 157대
  • 1987년- 292대
  • 1988년- 449대
  • 1989년- 2,643대
  • 1990년- 4,021대
  • 1991년- 2,725대
  • 1992년- 1,371대
  • 1993년- 17,042대
  • 1994년- 19,145대
  • 1995년- 32,493대
  • 1996년- 38,339대
  • 1997년- 34,397대
  • 1998년- 24,223대
  • 1999년- 19,433대
  • 2000년- 15,318대
  • 2001년- 12,626대
  • 2002년- 7,846대
  • 2003년- 3,890대
  • 2004년- 1,694대
  • 2005년- 1,800대
  • 2006년- 803대
  • 2007년- 14대[7]

해외 전개

경영파탄전의 GM는 상술한 대로 오펠을 유럽 지구 한정 브랜드에 평가하고 있어 2010년 시점에서 유럽 이외로의 오펠 브랜드차의 판매는 중동 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시아의 일부(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폴)만되고 있다.

오펠의 일부 차종은 오세아니아에서는 홀덴, 아시아라틴 아메리카등에서는 시보레리밧지 되어 판매되어 왔지만, 이것들은 2000년대에 차례차례 GM대우차베이스에 대체가 진행되어 갔다.

그 한편, 2000년대에는 새턴과의 차종 통합이 진행되었다.새턴은 벨기에안트웨르펜 공장으로부터 아스트라를 수입해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판매를 실시해, 반대로 오펠은 아메리카 합중국델라웨어 공장으로부터 새턴・스카이를 유럽에 수출해 오펠・GT로서 판매했다.또, 안타라새턴・뷰는 형제차가 되었다.그러나, 경영 파탄 직전이었던 GM는 연관융자 획득을 위해 2008년 12월에 경영 재건 계획을 발표해, 새턴은 정리해고 대상으로 여겨진[8].이것과 전후 해 이번은 뷰익 브랜드에의 리밧지가 진행되어 인 스페셜 인터레스트 그룹 니어가 중국 시장에( 후에 북아메리카 시장에도) 뷰익・법률로서 또 아스트라가 중국 시장에 뷰익・엑셀 XT로서 각각 도입되었다.

2010년 8월, 오펠이 중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 유럽 이외의 지역에의 브랜드 전개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 보도된[9].다음 9월에는 칠레에의 수출이 2011년부터 개시되는 것이 정식으로 발표된[10].계속 되어 이스라엘에도 2011년 봄에 진출을 완수한[11].

한편, 오스트레일리아 시장에는 2012년 8월에 진출했지만, 가격 경쟁에의 추종이나 브랜드 인지도의 향상을 위한 투자가 요구되는 등 채산을 잡히지 않는 것으로부터, 불과 1년에 철퇴가 결정된[12].

차종 일람

현행 생산/판매 차종

 
아담
 
카스케이다
 
인시그니아스포트트아라

※(은)는 과거, 일본에 도입된 것이 있는 차종

한 때의 생산 차종

 
레코르트 C 1966
 
사관 후보생
 
아스코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발표된 차종을 열기한다.

1950년대
  • 오린피아레코르트/1200당시의 대표적 소형차.1200은 사관 후보생 부활까지의 대중차시장 대책 모델이었다.또, 사상최초째라고 스테이션 웨건이 세단 외에 준비되었다.일본에도 다수가 수입되어 신뢰성이나 내구성이 높고, 2 도어면서 택시 업계에서 인기를 얻었다. ※
1960년대
  • 사관 후보생 1962년 전후형 발표의 주력 차종.GM社(GM)의 「글로벌 카(세계 전략차) 구상」에 근거해, 이 차를 베이스로 한 자매차가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어 1974년에는 의자□・제미니가 개발되었다.1984년 FF화해, 1991년 아스트라에 대체된다. ※
  • 레코르트 당시의 대표적 중급 차종.레코르트 C는, 일본의 텔레비전 드라마 「더・경비원」의 경비원들의 패트롤카로서 등장하고 있다.1986년 오메가에 대체된다. ※
  • 코모드레레코르트의 상급 고성능 사양.레코르트와 함께 오메가에 대체. ※
  • 카피테인 1960년대까지의 오펠의 대표 차종.1969년에 상급차애드미럴등과 함께 갱신되었지만, 그 후생산 종료. ※
  • 애드미럴/디프로마트 1960년대 후반, 본국 GM의 중형 플랫폼을 이용해 등장한 최상급 모델.디프로마트에는 5.4 리터 V8도 탑재되었다. ※
  • 올림피아 1967년 발표의 호화판 사관 후보생.1970년 아스코나에 대체된다. ※
  • GT(1100/1900) 당시의 「오펠=보수적」이미지를 타파한 스포티 모델.대미 수출도 되었다. ※
1970년대
  • 아스코나 1970년 발표.레코르트에 대신해 중급 레인지의 오펠 대표가 되었다.1988년 벡트라에 대체된다. ※
  • 만타아스코나와 플랫폼을 공용한 2 도어 쿠페.1975년 발표의 2대째는 아스코나와 같이 WRC용의 인정(인정) 모델도 제조되었다. ※
  • 상원 의원 1977년 발표.디프로마트등에 대신하는 최상급 차종.1986년, 오메가와 함께 신세대에 갱신되었지만, 1994년생산 종료. ※
  • 몬트 1978년 발표.상원 의원의 쿠페판.1987년생산 종료.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은)는 일본에 도입된 것이 있는 차종

인물

각주

  1. ^ 2005년부터 2010년 마지막까지는 표기가 GmbH가 되고 있었다.
  2. ^최초로 발매된 것은 미국판이지만, 원래는 오펠로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그러나, 실제로는 극히 초기 단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설계를 오펠, GM(미국), 의자□의 3사가 개별적으로 동시 진행했기 때문에, 밑주위나 외판의 일부를 제외하고 부품의 공통성은 거의 없다.
  3. ^ "오펠 매각:독일 정부, 고용 유지를 우선". 매일. jp. 마이니치 신문사(2009년 5월 31일). 2009년 5월 31일 열람.
  4. ^ "러시아 수상, GM에 「바보취급 한, 미국인 독특한 태도」". 산케이신문(2009년 11월 6일). 2009년 11월 6일 열람.
  5. ^ [1](링크 잘라라)
  6. ^해를 거듭할 때마다 애프터 파트의 공급수가 감소해 오고 있으므로, 차종에 따라서는 서비스 자체도 중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
  7. ^ [2](링크 잘라라)
  8. ^"GM, 재건 계획을 발표…브랜드를 4개에 좁혀". Response. (2008년 12월 3일). 2010년 9월 23일 열람.
  9. ^"Opel Will Export to China, Australia, Reilly Tells Frankfurter Allgemeine". 브룸바그(2010년 8월 25일). 2010년 9월 23일 열람.
  10. ^ "Opel exports into Chile". GM Media Online (2010년 9월 22일). 2010년 9월 23일 열람.
  11. ^"Opel Underlines Commitment in Growth Market Israel". GM Media Online (2013년 7월 9일). 2013년 8월 2일 열람.
  12. ^"Opel pulls out from Australia after only one year". WorldCarFans.com (2013년 8월 2일). 2013년 8월 2일 열람.
  13. ^일본에서도 일찌기, 타이 생산분이 「스바루・트라비크」의 이름으로 도입되었던 적이 있다.

관련 항목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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