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궁사
장궁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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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국보) | |
소재지 | 나라현 이코마시 가미마치 4443 |
위치 | 북위 34도 43부 6.8초 동경 135도 43부 35.7초 좌표: 북위 34도 43부 6.8초 동경 135도 43부 35.7초 |
절에 붙이는 이름 | 마유미산 |
종파 | 진언률종 |
본존 | 십일면관음(중요문화재) |
창건년 | 불명 |
개기 | 행기 |
지폐 곳 등 | 다이와 13불 영지 제 9번 |
문화재 | 본당(국보) 목조 십일면관음 입상, 흑 옻나무 두개의 문짝이 달린 궤(중요문화재) |
장궁사(나비 급사)는 나라현 이코마시 가미마치에 있는 진언률종의 절이다.절에 붙이는 이름은 마유미산, 본존은 십일면관음, 개기(창립자) 하행기라고 전한다.국보의 본당은 가마쿠라 시대의 밀교 불당의 대표작으로서 알려진다.
목차
역사
장궁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몇개의 설이 있어, 정설을 보지 않는다.「장궁사재수」에 의하면 나라시대에 아들의 유시에 해당되어 죽은 호족・마유미장활(마유미 사나워져 유미)을 애도해 쇼무 덴노가 승려・행 기본으로 열게 했다고 전해져, 후에 후지와라노 요시쓰구가 당탑을 정돈했다고 여겨진다.성시에는 탑두가 20원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현재는 4방이 남을 뿐이다.
전승에 의하면 진키 5년(728년), 새 봐 시골의 오노 마유미장활(도끼의 마유미 사나워져 유미)이라고 하는 인물이 쇼무 덴노에게 수행해 사냥하러 나왔다.동행하고 있던 장궁의 아들・장마려가 이상한 새가 날아 오르는 것을 보고 화살을 발사했는데 화살은 잘못해 장궁에 해당되어, 그는 죽어 버렸다.불운한 장궁부자를 불쌍히 여긴 성무는 승려・행 기본으로 명해 일사를 건립시켰다.행기는 십일면관음상을 안치해 이것을 본존으로 했다.십일면관음상의 두정에는 불면이 타고 있지만, 이것은 성무의 활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또한 「새 봐(등미)」는 장궁사의 위치하는 이코마 산 히가시후모토를 가리키는 낡은 지명으로, 진무 덴노 동정 신화에도 등장한다.현재의 나라시 서부로부터 이코마시에 해당한다.
그 후, 간무 천황(737년- 806년)의 시대에 후지와라노 요시쓰구(716년- 777년)가 재흥 했다고 하지만 환무의 즉위는 양계사후의 781년이므로 시대적에 맞지 않는다.다른 전승으로는 헤이안 시대 초기에 후지와라서계(774년- 843년)에 의해서 창건 되었다고도 말한다.
이후, 중세까지의 연혁은 별로 뚜렷하지 않지만 현재의 본당은 마룻대로 쓰는 목재명으로부터 홍안 2년(1279년)의 건립인 것이 분명하고 진언률종의 조・예존(1201년- 1290년)에 의해서 재흥 된 것이다.
장궁사의 경내 동쪽에 있는 이장낙(있어 자리나기) 신사는 메이지의 신불분리 이전에는 우두 천왕사( 않고라고 노우사)로 불려 사전으로는 쇼무 덴노가 장궁사의 고장을 지키는 신으로서 세우게 한 것이라고 한다.장궁사의 참배길 입구에 토리가 서는 것부터도 방문하도록(듯이), 근세 이전에는 신불 혼교의 신앙을 하고 있었다.
경내
경내안쪽에 국보의 본당이 세워 우측(동쪽)에는 이장낙신사, 약사원, 좌측(서쪽)에는 원생원, 법화원, 보광원이 있다.장궁테라모토절에는 주직이 없고, 4개의 탑두가 윤번제로 본당을 수호하고 있다.탑두 중 약사원, 원생원, 법화원은 스쿠보우를 영업해, 정진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 본당(국보)
- 마룻대로 쓰는 목재명으로부터 홍안 2년(1279년)에 건립되었다고 아는 입안방조・히노키피즙의 건물이다.일본풍을 기조로 하면서 비(띳장을 댄 중국식 문)・두관(인가 알지 않는 나무)의 목비(용재의 단부에 장식 조각을 베푼다)의 생각등에는 대불양식을 채용하는 등 가마쿠라 시대의 신와님의 전형적인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내부는 건축물의 기둥과 기둥 사이 3간에 걸치는 장대한 홍량(황량)을 걸쳐 놓아 예배 공간인 외진(지휘응)을 넓게 취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 삼중탑적
- 장궁사에는 일찌기 가마쿠라 시대 건립으로 여겨지는 삼중탑이 있었지만 재차의 이전의 끝, 현재는 첫층 부분만이 도쿄도 미나토구의 타카나와 프린스 호텔에 이축되고 있다.쇼와 9년(1934년)의 무로토 태풍으로 장궁사는 본당의 지붕이 대파하는 등의 큰 피해를 받았다.절로는 수리 비용 염출 때문에, 삼중탑을 매각하게 되었다.또한 삼중탑의 2층・3층은 빨리에 없어져 있어 당시 벌써 첫층만이 남아 있는 상태인 것 같다.탑은 일단 있는 실업가의 소유가 되어 카마쿠라시에 이축된 후, 쇼와 29년(1954년)에 타카나와 프린스 호텔 정원내에 이축되어 「칸논도우」라고 칭해지고 있다.동호텔에는 그 밖에도장궁사에 있던 문과 종루도 이축되고 있다.
- 마유미총
- 절의 동방 1 km 정도의 곳에 있어, 장궁의 총과도 쇼무 덴노의 활을 묻었는데와도 전한다(전승으로는 쇼무 덴노의 활의 일부를 사용하고, 본존 십일면관음의 두상의 불면을 새겼다고 여겨지고 있다).
문화재
국보
- 본당
중요문화재
- 목조 십일면관음 입상
- 본당의 본존으로서 흑 옻나무 두개의 문짝이 달린 궤에 안치되고 있는 평안 후기의 한 그루의 나무조의 상으로, 눈이 오른 개성적인 면모나 깊이가 있는 체구 등에 고 모양이 남는다.
- 흑 옻나무 두개의 문짝이 달린 궤
그 외
- 목조 십일면관음 입상
액세스
관련 항목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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