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테성종
다테성종(일부러 되어 가슴/무성해 가슴[1], 1435년(에이쿄 7년) - 1487년 10월 11일(장향원년 9월 25일)?)(은)는 다테씨의 제12대 당주.제11대 당주・다테지종의 차남.어머니는 헌덕원.정실은 오사키교겸의 여자.관직의 등급은 종4위 상병부 죠스케.
목차
생애
차남이었지만, 형(오빠)의 의종(좋아 가슴)은 서장자이며 뒤를 이을 수 없었기 때문에(후현전전종의 양자가 된다) 대신하고 적남으로 여겨져 부・지종의 뒤를 받아 문명 원년(1469년) 상속자를 이어 당주가 된다.동시에 오우슈 가마쿠라막부의 관직명에도 취임하고 있는[2].
오닌 원년(1467년)부터 문명 4년(1472년)까지의 사이에 코쿠부씨와 3도 싸워 간신히 화목 한[3].이 분쟁에 즈음하여 코쿠부씨를 지원한 데와노쿠니의 사가에씨를 공격한다.문명 11년(1479년) 겨울, 코리 하리마수를 대장으로서 사가에성에 침공하는 것의 추위 (위해)때문에 철퇴해, 다음 문명 12년(1480년) 춘 다시 바싹 쳐들어간다.다테군은 사가에장 깊숙하게 끌어들여져 코리 하리마수가 잡아져서 괴멸 한(창포늪의 싸움)[4].
문명 15년(1483년), 상경해 아시카가 막부에 칼 23진, 말 95 마리, 사금 380량, 전 5만 7000필을 헌상 하고 있다.이것은 다테씨의 실력을 오우슈 제일로서 중앙으로 인정하게 하게도 되었다.장향 2년(1488년), 오사키씨로 내란이 일어나면, 정실이 오사키씨 출신이라고 하는 경위로부터 오사키씨의 당주・오사키도리겸을 도와 이것을 당주로서 복귀시키는 것에 맡고 있다.
성종의 몰년은 자세하고 모르지만, 다테씨의 사서로는 장향원년(1487년)이 유력시 되고 있다.이 몰년이 올바르다고 하면, 전술한 오사키씨의 내란에 개입한 것은 성종이 아니고, 그 아이 상종이라는 것이 된다.또, 다테씨의 대대의 자손은 성종의 추도의 제례를 행하고 있다.
계보
각주
참고 문헌
- 사가에시사편씨위원회 「사가에시 사상권」, 1994
- 사가에시사편씨위원회 「사가에시사 오에씨 및 관계 사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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