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키 타카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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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키 타카마스상(타이유우사장) | |
시대 | 전국시대-安土桃山시대 |
탄생 | 다이에이 7년(1527년)? |
사망 | 게이쵸 3년 1월 14일(1598년 2월 19일) |
개명 | 웅만(아명)[1][2]→타카마스→안석재미암(호)[1][3]/안석[2] |
계명 | 홍경원재이와미치송[2] |
묘소 | 토치기현 오타와라시 테라쥬쿠의 광엄사 |
관직의 등급 | 종고이하・우에몬좌[1][2]、미마사카수[1][2] |
주군 | 나스 스케타네→자청→토요토미 히데요시 |
씨족 | 오오타하라씨→오제키씨 |
부모 | 부:오오타하라자청, 어머니:카나마루 카와치 마모루 딸(아가씨)[1] 야부:오제키종증 |
형제 | 타카마스, 사쿠야마 요시타카 무로, 후쿠하라자효, 오오타하라강청、나스정자실 양형제:증차 |
처 | 정실:우루노의 전 딸(아가씨) |
자 | 청증、청증、자증、무 곧、카나마루자만실, 센본자정정실(후노야성태실) |
오제키 타카마스(북가마니)는, 전국시대부터 安土桃山시대에 걸친 무장・영주.
목차
생애
오제키씨 상속
오오타하라자청의 장남으로서 다이에이 7년(1527년)에 태어났다고 여겨지는[4].
천문 11년(1542년) 경, 아버지의 정략으로 오제키종 증가의 양사자가 되어, 상속자를 이어 시라하타 성주가 된[5].천문 18년(1549년)의 키츠레가와 5월 비탈길의 싸움으로 첫 출진 하고 전공을 들었다.천문 20년(1551년), 종고이하・우에몬좌에 서임.후에 미마사카노카미가 되었다.
나스 씨와의 항쟁
에이로쿠 3년(1560년), 오다쿠라의 싸움으로는, 시라카와 유우키씨・노명씨의 침공에 즈음해 나스 스케타네를 원케, 방어전에 노력했지만, 전후, 전투에 고전한 일을 비난 당해 주가와 대립.타카마스는 오오타하라 씨등상 나스 사람들과 함께 사타케씨에게 내통 했다.이후, 상 나스 사람들과 나스씨의 사이에 싸움이 반복해져서[6], 에이로쿠 9년(1566년)에는 사타케씨・하야 우츠노미야씨도 더해져 자윤을 공격.그러나 자윤의 분전에 거부되어 다음 해, 사타케의중과 함께 대애산으로 나스씨와 싸우지만, 다시 거부되었다.
나스씨 중신으로서
자윤과의 싸움에 모두 진 오제키씨・오오타하라씨는, 에이로쿠 11년(1568년), 자윤과 화목[7].타카마스는 삭발해 주가에 반항한 죄를 사례했다.그 다음은 나스7기의 필두적인 인물로서 주가를 지탱해 나스자청의 대에는 나스씨에 있어서의 최유력자로서 권세를 자랑했다.덴쇼(연호) 4년(1576년), 거성을 백기성으로부터 검은 날개성으로 옮긴[8].덴쇼(연호) 6년(1578년), 츠구오・키요시 증가에 상속자를 양보했지만 실권은 계속 잡았다.
덴쇼(연호) 13년(1585년) 3월, 주군・나스자청과 함께 박엽지원의 싸움에서 시오타니의강・우츠노미야국강연합군을 깨어, 오제키세는 많은 수급을 들었다.동년 12월에는 주군・자청의 승낙을 얻어 센본자슌・자정부모와 자식을 모살해, 센본씨의 유령의 일부를 남동생인 후쿠하라자 타카시・오오타하라강 키요시등과 분할해, 친가인 모기씨에게 되돌려지고 있던 자슌의 양자・센본 요시타카에 센본씨의 상속자를 잇게 했다.또, 동년말부터 다음 덴쇼(연호) 14년(1586년) 1월에 걸쳐, 이쪽도 자청의 승낙을 얻고, 츠구오・키요시 증가를 이오노자신의 영지에 공격해 넣게 해 청 증가가 승리한 것에 의해 강화의 조건으로서 이오노령의 토고를 할양 시키는 등, 전단적인 행동도 눈에 띄었다.
독립
덴쇼(연호) 18년(1590년)의 오다와라 정벌로는, 주가의 나스씨가 지 참여해, 개역 된 것에 대해, 재빨리 참 진을 쳐 10,000석의 영지가 안도되어 또 장남・청 증가에도 3,000석이 주어진 일에 의해서 오제키씨는 13,000석을 령 하는 영주가 되었다.
몰연월일은 에도초기의 연호 많은 사람들 계도전으로는 게이쵸 5년(1600년) 1월 14일이 되고 있었지만, 관정중수제가부에서는 게이쵸 3년(1598년) 1월 14일에 정정되고 있다.향년 72(관정중수제가부).
각주
출전
- 「오제키 계보 약전」
- 『에도초기의 연호 많은 사람들 계도전』
- 「관정중수제가부」(6백 58)
- 「오제키증근가보」
- 「나스보견문록」(11)
- 「나스기」
외부 링크
- 사타케의중서약문시 지정 유형 문화재・고문서 | 오타와라시-텐쇼 11년(1583년) 5월 10 일자, 사타케의중으로부터 오제키 키요시증앞의 서약문으로, 사타케씨와 항쟁중의 나스씨 산하의 오제키씨가 사타케씨와 단독으로 화목 하는 내용이 되고 있다.이후 사타케씨는 오제키씨를 반지배하에 두어, 오제키씨는 잠깐의 사이, 사타케씨와 나스씨의 양속하가 된다.쿠마노우왕보인의 정식적이다 서약문이며, 청증앞이지만, 요즘의 집안의 실권은 타카마스가 장악 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 카미모토저색오제키 미마사카노카미 타카마스 화상시 지정 유형 문화재・회화 | 오타와라시-사후 얼마 되지 않은 무렵에 그려졌다고 여겨져 가장 생전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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