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모리 아키라
고 모리 아키라(뼈숲료[1] /알려 숲료[2], 1853년 12월 21일(요시나가 6년 11월 21일)[3] - 1919년(타이쇼 8년) 11월 27일[4])은, 메이지부터 타이쇼기의 내무 관료.관선현 지사.
목차
경력
이요국 우와지마성하 고텐쵸(현에히메현 우와지마시) 출신.우와지마 번사・고삼상포의 장남으로서 태어나는[1].1873년, 카미야마현에 출근.이후, 효고현, 히로시마현, 나가사키현, 에히메현, 교토부에서 근무[3].
1887년 5월, 에히메현 히가시우와군장으로 취임[3].이후, 겸니시우와군장[5], 교토부 참사관, 기후현 참사관, 사이타마현 서기관, 오카야마현 서기관, 도쿠시마현 서기관등을 역임[3].
1908년 3월, 돗토리현 지사로 취임.쿠라요시 중학교・현립 상업학교의 신설, 농업 시험장 확장, 경지 정리 사업, 인백우의 개량등을 추진[6].1910년 6월, 지바현 지사에 전임.동년 8월, 토네가와의 대홍수가 발생해, 내무성에 대해서 국영에 의한 토네가와 수계 개수 공사를 움직여 그 실현에 진력했다.또, 현 산미의 품질 향상 때문에, 현영 미곡 검사의 실시를 추진[2].1913년 6월 1일, 의원 면직본관이 되어 퇴관 한[7].
친족
각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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