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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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정화(보지 않는 속편 정화, 크로아티아어・보스니아어・세르비아어:етничкочиш□е□е/ etnickociscenje, 영어: ethnic cleansing)는, 복수의 민족 집단이 공존하는 지역에 있고, 어느 민족 집단을 강제적으로 그 지역으로부터 배제하려고 하는 정책.직접적인 대량 학살/집단 학살(영: genocide)이나 강제 이주외, 각종의 짖궂음이나 보여 닫아적인 폭력, 살인, 조직적 강간, 강제 임신등에 의해서 지역내로부터의 자발적인 퇴거를 재촉하는 행위도 포함된다.또, 직접적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동화 정책도 광의에는 민족 정화에 포함된다고 하는 견해도 있는[누구에 의해서? ]。
제2차 세계대전시의 나치스・독일의 괴뢰 파시스트 국가인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교육부 장관 미레・브다크에 의한 발언 「우리는, 세르비아인의 3분의 1을 살해해, 3분의 1을 추방해, 3분의 1을 카톨릭에 개종 시켜 크로아티아 인으로 한다」는, 세르비아인에 대한 민족 정화를 시사한 발언이며, 각각 대량 학살, 강제 이주, 동화 정책에 의한 특정 민족의 근절을 의도하고 있었다.
목차
어원
「민족 정화」는, 1990년대에 내전중의 구유고슬라비아 지역의 미디어에 빈번히 사용된 크로아티아어, 보스니아어 및 세르비아어의 「етничкочиш□е□е/ etnickociscenje(에트니츄코・시스체니)를 번역한 것으로, 보스니아 분쟁을 계기로 해 1992년경부터 세계의 주요 미디어에서도 넓게 사용되게 되었다.유통하게 된 계기는, 당시의 보스니아 정부와 PR계약을 맺고 있던, 미국의 광고 대리점 「루다-・핀사(Ruder Finn)」의 짐・하프(James W. Harff)가 효과적인 미디어 대책을 행했기 때문인[2].「루다-・핀사」는 당초, 세르비아인에 의한 학살을 비난하기 위한 말로서 「대량학살」을 사용했지만 이 말을 나치스에 의한 유태인 학살 이외에 사용하게 하는 것을 유태인 단체가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불쾌감을 드러냈으므로, 이것에 대신하는 말을 찾아낼 필요가 있었다.루다-・핀사는 「에트치니코・시체니」라고 하는 말을, 보스니아 분쟁 이전에 계약하고 있던 크로아티아측이 세르비아인을 비난 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던 것을 알아, 세르비아측을 공격할 때에 철저하게 사용하게 되었다.영역 시에 「ethnic purifying」와「ethnic cleansing」의 2 종류가 준비되어 당초는 어느쪽이나 사용되고 있었지만, 후자가 보다 잔혹한 인상을 주기 위해, 곧바로 「ethnic cleansing」에 이행 한[2].현재는 오로지 「ethnic cleansing」이 이용되고 있다.
어원에 관해서는 제설 있지만, 빠르면 제2차 세계대전시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 제2차 세계대전중에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의 사이에 생긴 민족 사이 학살을 가리켜 발칸 지역에서 이용되고 있던[2].제2차 세계대전 시대, 유고슬라비아 영내에는 크로아티아인의 민족주의자 우스타샤에 의해서, 나치스의 괴뢰 국가 「크로아티아 독립국」이 건국되었다.우스타샤와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당국은, 나치스와 협력해 역내의 유태인, 세르비아인, 로마등의 멸종이나 추방을 목표로 한[3].
그 후 요십・브로즈・티토-정권의 성립에 의해 유고슬라비아는 다민족국가로서 재출발해, 민족의 협조가 노래해졌기 때문에, 발칸 지방을 넘은 일반적인 말로서는 유통하지 않았던[2].이 때의 민족 정화의 기억은, 보스니아 분쟁시에 보스니아내의 각 민족에게, 다시 타민족이 스스로를 학살하는 것은 아닐것인가 라고 하는, 적지않은 공포감을 준 것 같은[4].다민족국가에서 만난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도, 1980년대, 요십・브로즈・티토-의 사후, 민족주의적인 감정의 높아짐에 따라서, 자민족은 「민족 정화」의 희생자이다고 하는 논조로, 이민족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장면에서 빈번히 이용되게 된[3].각 민족에게 대등의 권리를 보장하는 유고슬라비아의 제도에 의해서, 수상으로는 최대인 세르비아인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아져, 또 역사적으로 세르비아인이 많이 살고 있던 지방의 대부분이 세르비아 공화국의 밖에 놓여졌다.또, 코소보에서는 세르비아인의 유출에 의한 인구 감소와 다산 사회의 알바니아인의 인구 증대에 의해서 인구비율은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이러한 일에 대한 불만과 제2차 세계대전중에 나치스, 파시스트 정권과 협력 관계에 있던 크로아티아인, 알바니아인을 묶어 「세르비아인은 과거에 민족 정화의 피해자였다」, 「지금 또 세르비아인에 대한 민족 정화가 진행되고 있다」라고 한 논조로 이민족에 대한 증오를 높이고 있었다.
1990년대 전반에 일련의 유고슬라비아 분쟁이 시작되면,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이슬람교인(보슈냐크인)에 의해서, 적대하는 세르비아인의 잔혹성을 세계에 어필하는 목적의 선전으로서 발신되었다.로이・가트 맨(Roy Gutman) 등의 서방제국의 미디어등이 이것을 대규모로 채택한 것에 의해, 「민족 정화」의 말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는 곳(중)이 된[3].
민족 정화의 수법
자치체를 빼앗는
유고슬라비아에 있어서는, 자주 관리사회 주의나 전민중 방위로 대표되는, 말단 레벨의 지위 강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다양한 권한이 연방으로부터 공화국, 그리고 기초 자치체로 보다 하위에 이관되어 기초 자치체에는 큰 권한이 주어지고 있었다.그 때문에, 자치체의 탈취는 중요시되었다.자치체의 탈취는, 이하와 같이 해 행해졌다.
다수파의 형성이 용이한 경우, 선거나 의회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자치체의 권력을 손에 넣는다.시장이나 각료, 경찰서장등의 중요 포스트를 민족주의파의 정당 관계자로 차지하는 것에 의해서, 자치체의 탈취를 진행시킨다.
한편, 인구가 대항하고 있는 경우나 소수파인 경우, 다민족 융화적인 세력이 일정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 선거에 의해서 자치체를 빼앗는 것은 어렵다.이 경우는, 짖궂음이나 폭력등의 수단을 통해서 자치체 권력을 장악 한다.예를 들어, 지역내나 지역외로부터 온 민병을 사용하고, 시청이나 의회, 경찰서, 소방서등의 공공 시설을 제압해, 자치체의 권력의 장악을 도모한다.혹은, 대립하는 정치가를 폭력이나 협박, 살해에 의해서 배제한다.
이민족의 사회로부터의 배제
이것은, 이민족의 관공서로의 수속을 시키지 않는, 해직시키는, 외출을 제한하는 등 방법에 의해서, 이민족을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수단이다.
자치체를 빼앗는 것에 의해서, 시청이나 경찰, 소방, 우편, 그 외의 공적 기관에 근무하는 이민족이 해직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또, 공영기업으로부터도 이민족을 배제할 수 있다.자영업의 사람은, 영업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비상사태를 선언해 외출 금지령을 내, 이민족에 의한 외출 금지령의 위반을 단속하는 것에 의해서, 이민족의 행동을 크게 제한할 수 있게 된다.또, 시내 각처나 촌락의 출입구에 검문소를 마련해 이민족의 통행을 제한할 수 있다.
선전 활동
선전 활동에는, 다음과 같은 수단을 이용한다.길에서 선전하며 다니는 차량이나 빌라, 소문의 유포, 혹은 전파탑의 탈취등을 한다.자치체의 탈취에 의해서 공영 미디어를 지배하에 두는, 사영 미디어에 개입한다.
이 방법으로는, 이민족이나 이민족의 특정 개인에 대한 비방・중상을 유포한다.자민족은 이민족에 의해서 박해를 받은 역사가 있다, 지금부터 박해를 받는 위험이 있는, 이민족이 전투준비를 정돈하고 있는 등의 정보를 흘려, 자민족의 주민에게 불안을 주어 이민족에 대한 공포나 적대심을 이식한다.이민족에 속하는 개인이 은밀하게 민족주의에 의한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등의 정보를 흘리는 것에 의해서, 이민족의 유력자의 위신을 깍아 내려 주민에게 의심 암귀를 심어 이민족에 대한 불신을 가져온다.
안전을 위협하는
민병등을 사용해 이민족의 신체・재산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지역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이 방법으로는, 민병등이 이민족의 주거나 점포, 사업소 그 외를 습격해, 폭행을 더해 약탈한다.살해나 강간이 수반하기도 한다.보여 닫아로서 남의 눈에 붙는 (곳)중에 당당히 범행을 실시하거나 눈에 띄는데 폭행・살해된 피해자를 두거나 처참한 살해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이민족의 주민은 신체・재산의 위험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경찰이 민족주의 세력에 납치되고 있는지, 경찰이 민병에게 공포 하고 있으면, 피해를 받은 주민의 호소를 경찰은 무시하게 된다.또, 자치체 탈취에 의해서, 경찰의 자료나 시청의 등기부등의 공적 서류를 입수할 수 있다.이것에 의해서 이민족의 주거나 자산, 무기 소유등의 상황을 파악해, 습격 대상을 선정할 수 있다.
시의 부분의 주민을 무장해제 시키는
주민의 무기 소유 상황을 파악해, 무기의 소유자에 대해서 몸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약속해, 무기를 공출시켜, 무장해제 시킨다.이 단계에서는, 무기를 탐색하는 명목으로 가옥을 수색할 수도 있다.또, 무기의 공출을 거절하는 경우, 그것을 구실로서 체포할 수도 있다.
촌락을 무장해제 시키는
자치체의 중심이 되는 마을을 억제하면, 그 주변에 있는 촌락의 무장해제에 해당한다.시의 부분과는 달라, 소베에서는 특정의 민족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많아, 그러한 촌락에서는 주민이 무장해 자경단을 결성해, 검문소를 마련하거나 패트롤에 임하고 있거나 한다.촌락에 대해서 무장해제를 강요해, 거절했을 경우는 병력을 투입해 강제적으로 무장해제 시킨다.주민을 반란자로 간주해, 강제 수용소에 보내는지, 살해한다.
강제 퇴거시키는
자치체를 빼앗아 경찰등을 지배하에 두어, 자민족의 군을 충분히 동원해, 이민족을 무장해제 하면, 이민족의 강제적인 추방이 가능해진다.무력을 가지고 이민족의 주거를 덮쳐, 자산의 방폐를 선서시켜, 지배지외에 강제 이송하는지, 강제 수용소에 수용한다.이 과정으로는 많은 폭력을 수반해, 또 사망자도 나온다.특히, 소년이나 성인 남성은, 잠재적인 적병이 되므로, 강제 수용이 되는 것도 많다.
대량 강간하는
이민족의 여성을 구속하에 두어, 대량 강간한다.이것에 의해서 병사의 사기를 높이는 것과 동시에, 여성을 임신시킨다.강간은 여성에 대해서 지극히 중대한 정신적 데미지를 주어 또 적의 강간에 의한 임신은 이민족에 대해서 큰 불명예와 공포의 감정을 가져온다.여성등은 임신 후도 일정기간 구속되어 출산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단계에서 지배 지역외에 해방한다.이것에 의해서, 한층 더 많은 이민족의 자발적인 피난을 재촉할 수 있다.
이것을 테마로 한 영화에 「사라예보의 꽃[5]」, 「라이프・이즈・미러클[6]」이 있다.
멸종시키는
어느 역내에 있어서의 주민을 모두 살해한다.혹은, 그 주민 중 종군 가능 연령의 남성 등, 대상의 일부를 모두 살해한다.혹은 멸종 목적으로 강제 수용소에 보낸다.
자산을 파괴하는
주민이 없어진 가옥을 약탈해, 방화등에 의해서 파괴시킨다.혹은, 다른 지역으로부터 피난해 온 자민족의 난민에게 이러한 가옥을 준다.이것에 의해서, 탈출한 이민족의 귀환을 방해해 그들이 귀환해도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지배 지역외의 동포를 난민화 시키는
군사적으로 제압이나 점령 유지의 어려운 지역에 살고 있는 자민족이나, 적에 의해서 점령된 지역에 사는 자민족에 대해서, 이민족에게의 공포를 부추겨, 그 지역에 머물지 않게 요구하고 피난을 재촉한다.스스로가 사는 토지에, 난민이 되어 피난해 오는 「적지로부터 온 동포」는,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 이민족에 의한, 자민족에 대한 「민족 정화」의 실례를 만들어낸다.난민화한 「동포」의 모습은, 주민들의 사이에서의 이민족에 대한 공포나 적대심을 높여 스스로도 민족 정화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으면 자각시킨다.이것에 의해서 자기 목적을 정당화 해, 주민의 협력을 얻어 내 전력을 강화시킨다.또, 매스 미디어등을 통해서 난민들의 모습을 넓게 홍보해, 자민족에 대해서 동조적인 국제 여론을 만들어낸다.
- 지배 지역에 있어서의 자민족의 인구비율을 높인다.
- 난민들은 이민족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지기 위해, 기분전환으로 지배 지역내의 이민족에 대한 박해를 실시한다.
- 이민족이 떠난 후의 가옥에 새로운 소유자를 주어 이민족의 귀환을 곤란으로 한다.
각주
- ^타카노 로쿠로우 「민족 정화를 위해서-한센병예방책의 장래-」 「사 회사업」 제10권, 제3호, 1926
- ^ a b c d타카기 토오루(2002). 전쟁 광고 대리점 정보 조작과 보스니아 분쟁. 코단샤. ISBN 4-06-210860-7.
- ^ a b c사하라 토오루재(2008년 3월 20일). 보스니아 내전 글로벌리제이션과 카오스의 민족화. 일본, 도쿄: 유시사. ISBN 978-4-903426-12-9.
- ^이토 요시아키(1996년). 보스니아에서 일어난 것—--「민족 정화」의 현장으로부터. 이와나미 서점. ISBN 978-4000020947.
- ^ http://www.wound-treatment.jp/next/eiga/733.htm
- ^ http://www.wound-treatment.jp/next/eiga/771.htm
관련 문헌
출전은 열거할 뿐만 아니라, 각주등을 이용해 어느 기술의 정보원인지를 명기해 주세요.기사의 신뢰성 향상에 협력을 부탁드리겠습니다.(2014년 9월) |
- 사하라 토오루재(2008년 3월 20일). 보스니아 내전 글로벌리제이션과 카오스의 민족화. 일본, 도쿄: 유시사. ISBN 978-4-903426-12-9.
- 다타니 치카코(2005년 10월 20일). 「민족 정화」를 재판한다- 구유고 전범 법정의 현장으로부터. 일본, 도쿄: 이와나미 서점. ISBN 978-4004309734.
- 쿠보 케이이치(2003년 10월 10일). 찢어진 국가- 구유고 지역의 민주화와 민족 문제. 일본, 도쿄: 아리노부당타카분사. ISBN 978-4842055510.
- 이와타 마사유키(1999년 8월 20일). 유고슬라비아다민족 전쟁의 정보상-학자의 모험. 일본: 차의 물서점. ISBN 978-4275017703.
관련 항목
외부 링크
- 「민족 정화」라고 하는 말에 대해(전 도쿄대학 법학부 교수・시오카와 노부아키 홈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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