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역 폭발 사고
리리역 폭발 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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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표기 | |
한글: | □□□□□□□ |
한자: | 리리역폭발사고 |
발음: | 이리요크폽파르사고 |
일본어 읽기: | 리이익 폭발 자기 |
리리역 폭발 사고(이리 역폭발 자기)는, 1977년 11월 11일 21시 15분 (UTC+9)에 대한민국의 전라북도리리시(현재의 익산시)의 리리역에서 발생한 대형 열차 폭발 사고인[1][2].
목차
원인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40 t의 고성능 폭발물을 정식적이다 책임자도 없이 얹어 인천으로부터 광주를 향하고 있던 한국 화약(현・한파)의 화물열차가, 리리역에 정차중에 폭발 사고를 냈다.당시 , 수사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역 부근의 선술집에서 술을 마셔 화물열차로 돌아와, 차내에서 취침하고 있던 호송원이 밝게 하기 위해서 불붙인 양초가 화약상자에 전도했던 것이 원인이었다.화약류등의 위험물은 역 구내에 대기시키지 않고 통과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원칙을 무시해, 안전 의식의 결여가 인재를 일으켰다고 비판된[3].
피해 상황
역에는 직경 30 m, 깊이 10 m의 거대한 구멍이 비어, 리리시청의 전까지 파편이 날았다.역 주변 500 m이내의 건물은 대부분이 파괴되어 1,647세대, 7,800명 남짓의 이재민이 발생했다.사망자 59명, 부상자 1343명.
각주
PDF 신문 기사에 대해서는 한국 언론 재단(KIND)에서.
- ^"리리□「화약열차」□□대참사천□□사상□9천 5백□□파손 사망・실종 60□(리리로 「화약 열차」폭발대참사천여명 사상가 9천 5백여동파손 사망・실종 60명)". 동아일보.
- ^"□□・・・□□□□□□□□□□□폭음리리역□□참사상세보도"□□□□"시가□□□□천 감옥 TV축구□□□□□□□3 남매□□□□□참사□(바바・・・조용한 밤을 흔든 죽음의 폭음리리역 폭발 참사 상세보도"도와 줘와"시가는 칠흑의 천 감옥 TV축구 중계 보고 생각하지 않는 재난 3 남매가 한번에 참사도)". 동아일보.
- ^" 「□□□□□□□」1977□□□□□□□□( 「서표안의 오늘」1977년리리역 폭발 사고)". 동아일보. 2013년 8월 31일 열람.
관련 항목
외부 링크
- 리리역 폭발 사고(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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