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축렌즈
개요
원자 폭탄의 구조는, 크게 나누고, 간바렐형(히로시마시에 투하된 원자 폭탄 「리틀 보이」로 대표되는 방식)과 인 프로 존 방식(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 폭탄 「팟트만」으로 대표되는 방식)의 2종류로 분류되지만, 폭축렌즈는 인 프로 존 방식의 중심이 되는 기술이다.
간바렐형은 구조가 단순하지만, 플루토늄을 사용하지 못하고, 농도90%이상의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데다가, 소형화가 어렵게 핵분열의 효율도 낮기 때문에, 사용된 유일한 예는 히로시마의 「리틀 보이」에 있어서만이어, 인류 첫 원자 폭탄인 트리니티 실험의 「가제트」라고, 나가사키의 「팟트만」이후의 세계의 원자 폭탄의 대부분이 폭축렌즈를 이용한 인 프로 존 방식이 되고 있다(핵포탄에는 간바렐형의 채용예가 있다).
플루토늄 원폭의 과제
플루토늄을 이용하는 원자 폭탄으로는, 확실히 핵분열 반응을 일으켜, 초임계 상태로 하기 위해서, 주위로부터 강한 힘을 걸쳐 중심부를 압축할 필요가 있다.이와 같이, 주위 전체로부터 압축을 걸치는 것을, 인 프로 존(폭축)이라고 한다.
폭축에는, 화약이 연소했을 때에 발생하는 충격파를 이용하는 방법이 고안 되었지만, 중심으로 구형의 플루토늄을 두어, 그 주위를 화약으로 둘레와 감싸고, 전기 장치로 복수의 위치로부터 점화한 것 만으로는, 각각의 점화 위치로부터 가장 가까운 플루토늄인 만큼 힘(압축력)이 먼저 도달해 버려, 핵분열 반응이 발생하지 않는다.또, 압축력의 도달에 얼룩이 생기면, 플루토늄모로와도 자귓밥 미진에 흩날려 버리기 위해, 플루토늄의 주위 전체에 균등인 힘을 동시에 걸쳐 압축력이 도망치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폭축렌즈의 원리
맨해튼 계획의 과학자등은, 폭파 가공에 이용되고 있던 폭약 렌즈를 응용해, 연소 속도의 빠른 화약과 늦은 화약을 조합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구형의 플루토늄의 주위를 화약으로 싼다고 하는 구조는 같지만, 전술과 같이 점화 위치에 가까운 플루토늄만 먼저 충격이 전해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 늦은 화약을 코브장에 추가했다.이것에 의해, 점화 위치의 근처에서 먼저 전해져 버리는 압축력이, 속도의 늦은 화약의 코브로 감속되어 조금 늦어 플루토늄에 도달하게 된다.반대로, 점화로부터 멀어진 위치에서는 빠른 화약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압축력이 고속으로 전해지게 되어, 구형의 플루토늄의 모든 위치에서, 압축력과 전해지는 타이밍이 일치하게 되었다.
이 압축력의 전해지는 방법이 렌즈안의 빛을 닮아 있기 때문에, 폭축렌즈로 불렸다.
개발과 그 후
개발에 이르기까지는 화약의 연소 속도등 , 여러가지 조건이 일치하는 것이 구할 수 있어 당시의 화약학으로 이용되고 있던 CJ이론으로는 취급할 수 없는 만큼 정밀한 계산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새롭게 존・폰・노이만등에 의해서 ZND 이론이 개발되었다.
ZND 모델로는 선행하는 충격파는 불연속면으로서 다루어지지만, 쌍곡형편미분 방정식을 차분 근사로 수치적으로 풀려고 하면 충격파의 불연속면은 특이점이 되어 거기서 해가 발산해 버려 계산할 수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거기서 존・폰・노이만은 인공 점성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으로 상 포물형편미분 방정식의 차분 근사에 옮겨놓아 계산하는 것에 성공했다.그 결과, 곡선 나름대로도 충격파의 수치계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그러나, ZND 이론은 대단히 복잡하고 방대한 계산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1940년대 당시의 로스아라모스 연구소에 모아진 존・폰・노이만등의 수학자들의 손에 의해서, 우아하게 10개월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당시는,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이다.
계산의 결과, 점화 장치의 수와 거기에 응하도록(듯이) 배치된 화약의 코브는, 원자 폭탄 하나에 대해 32개가 최적이다라고 결론 되었다.그러나, 당시의 기폭 장치로는 32개의 뇌관을 동시 기폭할 때에 생기는 오차를 나노초단위에 거둘 수 할 수 없었다.그 때문에, 새롭게 기폭전교선형뇌관이 개발되었다.
원자 폭탄이 32면체(절정 20면체)의 구조를 취하는 것은 당연히 기밀이었지만, 맨해튼 계획에 참가한 세오도어・홀등 과학자의 일부는, 장래 미국이 핵을 독점하는 세계가 되는 것을 무서워하고, 이러한 정보를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에 흘렸다.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은 이것을 기본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곧바로 원자 폭탄의 개발을 시작해 스파이나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는 미국 과학자등에서의 계속적인 기술 정보의 제공을 받으면서 4년 후의 1949년 8월 29일에 핵실험(RDS-1)을 실시했다.
그 후도 폭축렌즈의 구조는 기밀 취급이며, 트리니티 실험의 영상등도 일부가 컷 된 상태로 공개되고 있었다.특히 점화 장치의 위치나 수는 당시의 최고 기밀에 속하는 것이었다.
최초의 폭축식 원폭인 팟트만으로는 폭축렌즈의 폭약만으로 2500킬로나 되어 중량의 반이상을 차지해 직경은 137.8센치로 크게 원폭이 대형화하는 최대의 원인이 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후년으로는 폭축렌즈의 소형화가 중요한 과제가 되어, 여러가지 방법에 따라 최종적으로는 직경 30센치에 들어갈 정도로까지 소형화되고 있다.
폭축렌즈는 지극히 고도의 기술이다.단순한 폭발의 동기, 압력의 균일화만이 문제 (이) 아니라, 그 밖에도 여러가지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에, 타국의 설계나 장치의 단순한 유용도 곤란하다.그러나, 실제로는 인도에 이어 2006년에 비선진국의 북한이 플루토늄형의 원폭 실험을 실시해 폭축렌즈에 대해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고 여겨진다.
참고서적
관련 항목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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