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사건
| 오메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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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 행진중의 피고와 그 가족.왼쪽 뒤의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이 피고 단장 | |
| 장소 | |
| 일자 | 1952년2월 19일 이른 아침(JST) |
| 개요 | 국철 오메선 코사쿠역에서 일어난 열차 폭주・충돌사고 |
| 손해 | 국철 소유의 화차 |
| 용의자 | 10명:전원 무죄 |
오메 사건(왕째사건)은, 1952년 2월 19일의 이른 아침에 일본 국유철도(국철) 오메선 코사쿠역에서 일어난 열차 폭주・충돌사고이다.
목차
사고
2월 19일 이른 아침, 코사쿠역 구내에 유치되어 있던 4량의 화차가 움직이기 시작해, 그대로 경사가 있는 본선에 유출했다.폭주한 화차는 하무라역을 통과해 훗사역의 끌어 들여 선에 들어가 정차중의 화차에 격돌, 대파했다.
그 후
국철은 당초, 인위적인 미스로서 내부 처리했지만, 오메선에서는 전년의 1951년 9월부터 12월에 이르기까지 열차 방해가 연속해 발생하고 있었던 것에 가세해 거의 동시기에 무인 열차가 폭주해 6명의 사망자를 낸 미타카 사건이 발생한 것등에서 경찰은 일본 공산당 관계자의 범행을 의심해 수사.다음 1953년에 오메・하무라・훗사의 공산당 활동가외 10명을 철도 왕래 방해의 용의로 체포해, 기소를 단행했다.
제1심 및 공소심으로는, 피고 전원에게 유죄판결이 내렸지만, 그 후 국철의 사건 기록이 발견되거나 유죄의 결정적 수단이 된 자백이 고문에 의하는 것과 판명.1966년에 최고재판소는 심리를 도쿄 고등재판소에 환송해, 2년 후의 1968년에 피고 전원의 무죄가 확정했다.
관련 서적
- 고토 쇼지로 「원죄」(이와나미 서점)
- 가지 와타루 「열 수 있는 가는 아침」( 신일본 출판사)
- 토미야마 카즈코 「지성에의 도전」(이웃사)
- 히로츠 카즈로 「오메 재판」(오메 사건 도쿄 간담회)
- 「정의와 진실을 위해서」(오메 사건 대책 협의회)
- 「만들어진 줄거리」(오메 사건 중앙 대책 협의회)
- 「있는 음모」(중앙 오메 사건 대책 협의회・일본 노동조합 총평 의회)
- 「오메 15년」(노동 순보사)
- 노자키 우메코 「철로의 증언」(코오요 출판사)
- 노자키 우메코 「종의 정」(일본국민 구원회 산타마총지부)
- 영화 「철로의 증언」(오메 사건 영화 제작 위원회)
관련 항목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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