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랑코・로텟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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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랑코・로텟리(Franco Rotelli, 1942년- )는 이탈리아의 정신과 의사.
이탈리아의 정신과 의사.이탈리아에 있어서의 정신 보건 개혁의 주인공의 한 명.개혁의 아버지, 흐랑코・바자리아의 필두격의 협력자로, 바자리아가 파르마 현립 코로르노 정신 병원의 원장이었던 1970년무렵부터 친교가 있어, 바자리아를 Trieste로 맞이할 수 있었던 1971년부터 Trieste 현립 산죠바니 병원 원장을 그만두는 1979년까지, 행동을 같이 했다. Trieste의 정신 보건 개혁의 실험은, 후에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지만, 1978년에 성립한 법률 180호( 신정신 보건법, 통칭 바자리아법)의 기초 시기에, 이 실험은 「정신 질환은 병원 없이 유지된다」일을 증명했다고 하는 의미로, 중요한 역할을 완수했다.그리고 바자리아법은, 이탈리아 전 국토의 정신 병원의 완전 폐쇄와 거기에 대신하는 지역 정신 보건 서비스망의 정비에, 길을 열었다. 로텟리는, 바자리아가 수도 로마의 정신 보건 개혁을 위해서 Trieste를 떠난 1979년에 산죠바니 병원장을 이어, 1980년에는 병원을 완전하게 닫았다.그 후 1995년까지, Trieste현의 지방 보건 기구(USL)의 정신 보건 국장을 맡았다.후USL는 지방 보건 공사(ASL)에 개편 되어 로텟리는 10년 이상에 걸쳐서 공사 대표를 맡았다.2013년에는 프리울리・베네치아・유태인 리어주 의회 의원이 되어, 보건・사회정책 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다.
목차
경력
3 형제의 막내 아우.장남은, 10년간 카자르맛죠레라고 하는 작은 마을의 촌장을 맡았다.차남은, 1990년대 이탈리아의 예수회의 관할구역장이었다. 파르마 대학에서는 의학 전반 및 외과를 배워 졸업.「죽은 몸의 과학」으로부터 「인간미 있는 의학」으로 지향.아버지 피에트로는, 전후 얼마 되지 않을 때, 영세농가나 포강유역의 경작자들로 협동조합을 설립한 인물이었다.그런 아버지의 행동이나, 가족의 누구나가 담당하고 있던 사회적인 책무, 에 촉발 되고, 인간의 「권리」나 「자유」에 강한 관심을 안게 되어, 「억압적이고 인권에게 무관심한 정신의학」이라고 만나게 된다. 의학부를 졸업한 1969년, 로텟리는 임상 신경 정신의학을 전공.론바르디아주의 카스티리오네・젯레・스티비에이레 사법 정신 병원(법무성 관할)에서 일하게 된다.그는 법무성과 흥정하고, 이 보안 처분 시설로부터 피수용자를 겉(표)에 데리고 나가는 행동을 취한다. 그 당시 , 벌써, 그는 파르마 현립 정신 병원장의 바자리아와 친교가 있었다.그리고 바자리아가 1971년에 Trieste 현립 정신 병원으로 맞이할 수 있으면, 로텟리는 바자리아아래에서 일하게 된다.당초는 연수의였지만, 1973년, 현립 정신 병원의 채용시험에 수석에서 합격.약관 30세에 있었다. 1979년, 바자리아가 Trieste의 정신 병원장의 일자리를 물러나고 로마에 옮길 때, 후계자에게 로텟리를 지명.로텟리는 정신 병원을 닫으면, 365일 무휴 24시간 오픈의 정신 보건 센터, 지원 아파트, 그룹 홈, 취업을 위한 사회 협동조합, 예술적・문화적・연극적인 활동을 실시하는 아틀리에등을 설립.세계의 모델이 되는 지역 정신 보건 서비스의 시스템을 만들어 내 갔다. 1986년에는, 정신 보건 연구・리서치 센터가 발족.동센터는, 이윽고 세계 보건 기구(WHO)의 협동 센터가 되었다. 180호법은, 긴 세월에 걸쳐 여러가지 정치 권력이나 이탈리아가 많은 지방 행정으로부터 적대시되어 왔지만, Trieste의 정신 보건 서비스의 실적이, 동법의 신뢰성을 담보하게 되었다. 1980년대의 전반에는, 정신 병원에 대신하는 정신 의료를 내건 「그물형 레이스・인터내셔널」에 참가,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스페인,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즈에라, 그리스, ( 구) 유고슬라비아,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들에 초대되어 강연해, 정신 질환의 사람들이 버림받고 있는 현실을 규탄. 1990년대의 반, 유럽 위원회(오늘의 EU)로부터 맡겨지고, 그리스의 레로스섬에 있는 지극히 폭력적인 마니코미오(정신 병원)를, Trieste와 네델란드에서 팀을 짜 개혁. 1997년이 되면 로텟리는, 이탈리아~쿠바의 정부간협력의 책임자라고 하는 임무를 맡았다.동국에 있는 정신과시설을 둘러싸고, 비판적인 성찰을 실시해, 약 1년에 걸쳐서, 하바나에서 쿠바 당국의 특별 조처를 수행.동시에 세계 보건 기구(WHO)의 프로젝트로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도미니카 공화국의 정신 보건 개혁에 참가. 1998년,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주 정부에 의해, 「트리에스티나 1」보건 공사의 대표로 임명되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칸파냐 주지사 밧소리노의 초대로, 「카제르타 2」보건 공사 대표가 되었다.「카제르타 2」의 관내에는, 악명 높은 아베르사 사법 정신 병원이 있었다.로텟리는, 사법 정신 병원으로부터 죄수를 구조해 내기 위해서, Trieste류의 두꺼운 지역 정신 보건 서비스망을 구축했다. 2013년, 로텟리는, 프리울리・베네치아・유태인 리어주의 주 의회 의원이 되어, 보건・사회정책 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사상
로텟리는, 1967년에 발표한 처녀작 속에서, 벌써 지배적인 정신의학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비판적인 자세를 선명히 밝히고 있었다.그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구조 모든 것을 완부없는까지 논파하며 갔다.그 중에서도, 공식의 정신의학이 만들어낸 것으로, 중요시되고 있던 클트・슈나이더의 「정신병질의 개념」에 초점을 맞히고, 비판을 전개했다.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주제에 자리잡은"살톨적"어프로치를 제창했다. 이 어프로치로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주장하고 있는, 역사를 넘은 목적이나 독자적인 목표가 아니고, 보편적인 가치를 희구해, 자유라고 하는 윤리를 분명히 새긴 실천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 이후, 과학모도 나무의 단순화 한편 합선화 된 바보스러운 진단이 아니고, "complex system의 지"에 근거하면서, 자유롭게 향한 실천을 진행시켜 나가는 이치를, 로텟리는 숙고해 나가게 된다.여기서 말하는"complex system의 지"란, 객관적인 물리 주의라고 하는 것보다도, 지금 확실히 생기고 있는 물리적인 작용에 주목하면서, 주체와 주체의 사이나 주체와 집단의 사이로, 끊임없이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마니코미오의 임종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패러다임과 거기로부터 일으켜지는 폭력을 넘어 가기 위해서는, 불가피의 통과점이라고 로텟리는 생각하고 있었다.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complex system에 근거하는 패러다임이며, 그곳에서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성이, 자유로운 실천이나 정책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활에 있어서의 자유와 인간 사이의 상호 관계를,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그렇다고 하는 것은,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과의 만남과 충돌에 마주봐, 또, 그러한 만남과 충돌 속에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또, 사람들이 살아 있는 구체적인 현실 세계 속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과 충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일본, 브라질, 스페인, 프랑스, 그 외 수많은 나라들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발표된 문장은, 「정상적임을 위해서」와 제목 된 작품에 모을 수 있고 있다.그곳에서는, 인스피레이션의 원천이 되는 여러가지 원칙이 제시되는 것과 동시에, Trieste의 정신 의료 서비스를 발본적으로 재구축하기 위한 이치가 기술되어 있다. 로텟리는, Trieste 및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 한층 더 유럽 및 그 이외의 나라들에 있고, 정신 의료의 구조를 바꾼, Deistituzionalizzazione(탈시설화, 어사이럼의 극복)과"정치체제의 창조"의 과정, 을 분석했다.마니코미오의 폐쇄는, 환자를 버리는 것과 다름 없다고 주장하는 보수파로부터의 비난에 대해서, 로텟리는, 1986년, "탈시설화--또 하나의 이치"라고 제목 된 논문을 발표했다.그것은, 후에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그 논문에서는, Trieste의 실천을 진행시키는데, 지역사회 전체에 대해서 책임을 맡는 것, 또, 그러한 대처가 미국이나 다른 많은 나라들의 공공정책의 흐름과 얼마나 큰 격차가 있을지가 분석되었다. 또, 정책 속에서 사회적 포섭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게도, 다대한 주의를 향할 수 있었다.그러한 증언은, 1980년대의 후반의 오타・데・레오나르디스나 디아나・마우리와의 공저 「사회적 기업을 위해서」 속에서 발표되었다. 사회적 배제라는 것은, 실제의 곳, 모든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사업에 대하고, 어디에라도 존재하고 있는 숙적이다.그 숙적이, 정신 의료라고 하는 영역에서는, 강제이라고 할까들로 나타나 그것이 온 세상에서 반복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거기서 로텟리가 제창한 것은, 완전히 정반대의 실천이었다.그것은, "정신병을 괄호에 괄루"라고 하는 바자리아가 나타내 보인 전제에 근거하면서, 모든 분야나 장소에 있고, 적극적인 활동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었다.그곳에서는, 정신병 환자에게 새겨진 스티그마, 환자를 물건과 같이 취급하는 과정, 환자의 구속에 논쟁, 인간에게 있어서의 보편적인 필요성이나 모든 의미로의 공정함에 응하는 것이 중시되었다.정신병 환자에게는 이러한 권리가 충분히는 확보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사회 생활 속에서 누구보다 손상시킬 수 있고 있어 언제라도 손상시킬 수 있는 싼 입장에 있었다.사회적 신분의 보장이라고 하는 의미에서도, 그러한 필요성이나 공정함이 한층 더 존중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로텟리는 대처를 추진하는 가운데, 그 관심을 정신 의료로 의료 시스템 전체에까지 넓혀 갔다.그곳에서는, 한 명의 주체에 봉사하는 의학을 탐구하는 것이 구할 수 있었다.그러한 주체는, 확실히 의료와의 관계성 속에서 나타나는 것인가.아주 없으면, 의학에 패배시켜져 버릴까였다. 사람들이 기다려 바라고 있던 것은, 생활 속에 있는 현실의 문제에, 어떻게 직면해야할 것인가를 지시하는 의료의 구조였다.따라서, 거기에는 의료 분야 만이 아닌, 건강하게 관계되는 본질적인 문제,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관계라고 하는 문제에 응하는 일도 필요하게 되고 있었다. 병원이나 의료에는, 자주 이러한 관계를 절단 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언제 재발한다고도 할 수 없는 병에 대해서, 가장 바람직한 예후를 소중히 하는 수단으로서는, 생활을 둘러싸는 환경이나"사회적 자본(소셜l・캐피탈)"를 지지하는 것이 불가결하다에도 불구하고이다. 따라서, 언제라도 옹호 되어야 할 것은, 강고한 공적 지역 의료이며, 병원(확실히 병원이 E.곳후만이 말하는"전제적 시설" 중 하나였다)라고 하는 역할의 새로운 축소였다.공적 시설을 민주화 해 나가는 것, 또, 그러한 시설의 투명성과 유효성을 높여 가는 것은, 의료 기구를 운영하는데,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로서 추구되었다.로텟리는, 수십년에 걸쳐서, 이러한 일로 힘을 다했기 때문에 있다. 흐랑코・로텟리의 실천과 사상은, 언제라도 변함없이, 하나의 확신에 관철해지고 있었다.그 확신이란, 닫힌 시설과 열린 시설의 사이에서의 모순이든, 그러한 변증법으로 임하는 것으로 저것, 우리의 시대의 근본적인 모순이라는 것이, 여러가지 사회조직과 대인관계성에 대하고, 정치적・윤리적・과학적인 관점으로부터, 최우선 되어야 할 책무가 틀림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2015년의 5월, Trieste의 의료 팀의 40년간에 걸치는 대처 관한 , 문장과 사진으로부터 되는 연대기 「창조된 시설」이 출판되었다.그 중으로, 로텟리는 Trieste의 정신・보건의료 서비스를 둘러싸고, 전인 미도의 활동이나 사건으로 가득 차 흘러넘친 도정을 그려냈다.그러한 사업을 통해서, 인생에 의미를 주는 실험실이 만들어져 모든 생활의 국면이 전개해 가는 종합적인 환경이 형태 만들어졌다.거기서 사람들은, 룰과 유토피아와의 틈에서, 정서적인 면이나 사람과의 관계라고 하는 면, 혹은, 보다 집단적인 면이나 연극성이라고 하는 일면, 그리고, 실제로 무엇인가의 사업에 착수하려고 하는 측면을 탐구하게 되었다.
문헌
- L'impresa Sociale, Milano, Anabasi, 1994, ISBN EAN ISBN 9788841770191.
- La empresa social (PDF), Buenos Aires, Ediciones Nueva Vision, 1995.
- Per la normalita, Trieste, Casa Editrice Asterios, 1997, ISBN EAN ISBN 8885326102.
- Desinstitucionalizacao, San Paolo, Hucitec Editore, 2001.
- Vivir sin Manicomios, Buenos Aires, Editorial Topia, 2014.
- L'istituzione inventata/Almanacco Trieste 1971-2010, Merago, Edizioni Alphabeta Verlag, 2015, ISBN EAN 978-88-7223-234-7.
관련 사항
외부 링크
- deistituzionalizzazione-triest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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