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9일 금요일

플레이오프 제도(일본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제도(일본 프로야구)

일본 프로야구에 있어서의, 플레이오프 제도(플레이오프 서양)에 대해 해설한다.

목차

역사

1 리그 시대

1 리그 시대는 1년 1 스테이지에 의한 장기전 형식이 아닌 시대가 있어, 그 해의 우승을 들인 플레이오프를 했다.

  • 1936년의 경우, 춘계 대회는 도쿄 거인군은 미국 원정이기 때문에 불참가, 또 나고야금 장식물군도 결성 기념 리그 대회를 끝내면 미국에 원정 했기 때문에, 공식전이면서 우승 팀을 결정하지 않았지만, 하계 대회로는 도쿄, 오사카, 나고야의 3 대도시에서의 토너먼트전에서 우승한 팀에 의한 플레이오프가 예정되어 있었다.그러나, 회장의 조달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승 보관이 되고 있다.
  • 동년 추계 리그는 3 대도시에서의 총당 리그 5회, 토너먼트 2회의 형편 7 대회 각각 우승한 팀에 승점 1(복수 균등한 할당)을 주어 그 합계 승점이 많은 팀이 리그 우승이 된다.하지만, 도쿄 거인군과 오사카 타이거스가 승점 2.5씩을 서로 나누었기 때문에, 3전 2승제의 동점 결승을 실시해, 2승 1패로 억제한 도쿄 거인군이 최초의 챔피언에게 빛났다.
  • 한편 1937년1938년은 춘계・추계의 2 스테이지에서 싸워, 1937년은 춘계가 도쿄 거인군, 추계는 오사카 타이거스, 1938년은 춘계가 오사카 타이거스의 연패, 추계는 도쿄 거인군이 각각 우승하고, 각각 메이저 리그월드 시리즈의 방식으로 모방한 7전 4승제에 의한 연간 종합 우승 결정전을 개최.각각 4승 2패, 4연승으로 도쿄 거인군을 꺾은 오사카 타이거스가 일본 제일의 자리에 들었지만, 이 2년간은 춘계・추계의 각각의 스테이지가 독립한 시즌의 취급이라고 보여지고 있었기 때문에, 스테이지 우승에 관해서는 통산의 우승 회수에 카운트 되고 있지만, 연간 챔피언은 노 카운트가 되고 있다.

퍼시픽 리그

1952년

예선 리그는 7 팀의 18회총당(1 팀 108 시합)을 실시해, 상위 4 팀이 결승 리그로서 게다가 4회총당( 동12 시합)을 실시.상위 4 팀의 성적은 예선과 결승의 종합 성적으로 결정했지만, 하위 3 팀과의 성적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는 것, 한층 더 「하위 구단의 잘라서 버림이다」라고 하는 비판이 나온 것에 의해, 1년에 폐지되었다.결승 리그도 공식전에 포함되기 위해, 엄밀하게는 플레이오프는 아니다.

1973 - 82년

인기 저하 등 프로야구 재편 문제에 수반해 도입된 연간 26회총당( 동130 시합)을 전・후기 각 13회씩(65 시합)에 단락지어, 각각의 스테이지 우승을 결정한다.전기와 후기에 스테이지 우승 팀이 다른 경우, 5전 3승제에 의한 우승 결정전을 개최했다(동일 팀 완전 우승의 경우는 시행하지 않고).홈 게임에 관해서는, 제1・2전은 전기 1위 팀, 제3-5전은 후기 1위 팀의 각각의 홈 스타디움에서 실시했다.연간 순위는 플레이오프의 승자가 1위로, 2위 이하는 전후기 통산의 승률순서로 했다.이 때문에, 플레이오프에 진 팀이 플레이오프에 출장하지 않았던 팀의 전후기 통산 승률을 밑돌아, 연간 순위가 3위가 된 적도 있었다(77년 및 81년의 롯데).또 동제도 초년도 73년의 남해(전기 우승)는 전후기 통산 승률로는 3위이지만, 리그 우승이다.

이 시기의 플레이오프 제도는 전기와 후기에 시즌을 나누고 있는 것부터 「2 시즌제」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덧붙여 개인상에 관해서는 전후기 130 시합의 성적만으로 결정해, 플레이오프로의 성적은 가산되지 않는다.(2004-2006해의 상위 3강순위 결정전, 및 그것을 발전시킨 2007년 이후의 클라이막스 시리즈의 방식도 마찬가지)

개최 구장 승리 팀 성적 경기 성적표 패전 팀
1973년(상세) 오사카, 니시노미야 남해(전) 3승 2패 ○●○●○ 한큐( 후 )
1974년(상세) 니시노미야, 미야기 롯데( 후 ) 3승 0패 ○○○ 한큐(전)
1975년(상세) 니시노미야, 후지이데라 한큐(전) 3승 1패 ●○○○ 킨테츠( 후 )
1976년 전후기이나 한큐 우승을 위해 플레이오프 실시하지 않고
1977년(상세) 니시노미야, 미야기 한큐(전) 3승 2패 ○●●○○ 롯데( 후 )
1978년 전후기이나 한큐 우승을 위해 플레이오프 실시하지 않고
1979년(상세) 오사카, 니시노미야 킨테츠(전) 3승 0패 ○○○ 한큐( 후 )
1980년(상세) 카와사키, 오사카 킨테츠( 후 ) 3승 0패 ○○○ 롯데(전)
1981년(상세) 카와사키, 코라쿠엔 일본 햄( 후 ) 3승 1패 1분 ○△○●○ 롯데(전)
1982년(상세) 세이부, 코라쿠엔 세이부(전) 3승 1패 ○○●○ 일본 햄( 후 )

※「개최 구장」은, 전자는 제2전까지, 후자는 제3전 이후의 개최 구장

※연간 최고 승률 구단인 플레이오프 패퇴 구단은 73년 한큐, 75년 킨테츠, 79년 한큐, 82년 일본 햄[1]

1983 - 85년

연간 26회총당( 동130 시합)을 실시해, 1위와 2위의 게임차이가 접근했을 경우(5 게임차이 이내)에, 최대 5 시합의 플레이오프를 포함한 변칙 1 시즌제를 채용(승률은 그 플레이오프 개최분을 합한 것으로 계산)했지만, 이 3년간의 우승 팀이 모두 5 게임차이를 넘는 독주[2]였으므로 실제로는 행해지지 않고 「환상의 플레이오프」라고 말해진다.

통상의 플레이오프의 경우는 차례 승부(1982년 이전에는 일률 5전 3승 방식)가 채용되지만, 이 제도로는 130 시합의 레귤러 시즌을 2위로 통과한 팀이 1위 팀과 5 게임차이 이내에서, 한편 2위의 팀이 소정의 플레이오프 시합수의 5 시합을 더한 최대 135 시합의 승률로 역전 우승의 가능성이 있으면 플레이오프를 실시한다.단, 1위와 2위의 연간 성적은 플레이오프를 포함한 전실시 시합수의 승률로 싸우기 위해, 만일 1위 팀이 1승 한 후, 2위 팀이 나머지의 4 시합을 전승해도 승률을 웃돌지 않는다고 하는 상황의 경우는 5 시합을 끝내지 않아도(3승 이상에서 이겨 월 해되지 않아도) 그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해, 1위 팀의 우승이라는 것이었다.

2004 - 06년

연간 27회총당( 동135 시합)의 레귤러・시즌(사실상의 예선 리그. 2005・06년은 연간 20회총당( 동100 시합)과 센트럴・리그와의 교류 시합( 동36 시합)의 합계 136 시합)의 상위 3 팀(A클래스를 확보한 팀)이 스텝 라다-토너먼트에 의한 플레이오프에 진출. 2004・05년과 2006년으로는 방식으로 차이가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2004・05년의 방식을 적어, 2006년의 변경점에 대해서는 후술 한다.

기본 방식
  • 제1 스테이지[3] - 레귤러・시즌의 2위와 3위가 3전 2승제로 대전.
  • 제2 스테이지[4] - 제1 스테이지의 승자와 레귤러・시즌의 1위 팀이 5전 3승제로 대전해 리그 우승을 결정한다.단, 1위 팀이 레귤러・시즌에 제1 스테이지의 승자에게 5 게임차이 이상 붙이고 있었을 경우, 1위 팀에는 1승 분의 어드밴티지가 주어진다.
    • 시합의 흥행 권리는 제1 스테이지에서는 레귤러・시즌의 2위 팀이, 제2 스테이지에서는 1위 팀이 전시합 획득한다.
    • 연장은 12회까지의 무승부제가 채용되지만, 성적이 타이의 경우( 제1 스테이지에서의 1승 1패 1무승부나 제2 스테이지에서의 2승 2패 1무승부등)는 대전 팀의 레귤러・시즌 성적 상위 팀을 이겨 내라고 된다.
    • 연간 순위는 1위가 제2 스테이지의 승자로, 2위 이하는 남아 팀을 승률순서에 늘어놓는다.
      • 이것에 의해 우승 팀 이외는 플레이오프의 성적에 의한 연간 순위의 변동은 없다.레귤러・시즌의 3위 팀이 제1 스테이지를 이겨(2위 팀을 이겨) 제2 스테이지로 나아가도, 거기서 패퇴하면 연간 순위는 2위는 아니고 3위로서 다루어진다(실례:2006년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예외
  • 레귤러・시즌 1위의 팀이 2 팀 있는 경우는 제1 스테이지는 실시하지 않고(3위 팀의 플레이오프 출장 없음), 1위의 2 팀에서 제2 스테이지만을 실시한다.
    • 이 경우의 흥행 권리는 전년의 레귤러・시즌 성적 상위의 팀이 전시합 획득한다.
    • 이 케이스로 제5전이 끝나 성적이 타이의 경우, 제5전의 다음날로 연장 무제한하고 제6전을 실시한다.
  • 레귤러・시즌 2위의 팀이 2 팀 있는 경우 해당 2 팀에서 제1 스테이지를 실시한다.
    • 이 경우의 흥행 권리는 전년의 레귤러・시즌 성적 상위의 팀이 전시합 획득한다.
    • 이 케이스 제 3전이 끝나 성적이 타이의 경우, 이하의 차례로 제2 스테이지 진출 팀을 결정한다.
  1. 해당 팀간의 레귤러・시즌의 대전 성적
  2. 승률 1위 팀과의 대전 성적
  3. 교류 시합을 제외한 리그전 성적
  • 승률 1위의 팀이 1 팀만으로, 승률 3위 팀이 2 팀 있는 경우는 전년 레귤러・시즌 성적 상위 팀의 본거지에서 3위 결정전을 연장 무제한하고 실시해, 제1 스테이지 진출 팀을 결정한다.
변경점

2004・05년의 레귤러・시즌의 1위는 함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004년은 후쿠오카 다이에호크스)였지만, 양년 모두 2위와의 게임차이는 4.5와 앞으로 0.5 게임의 차이로 1승의 어드밴티지가 붙지 않았던 것이 화가 되어, 제2 스테이지는 2회 모두 2승 3패로 패퇴.이 때문에, 1위 통과 팀과 1 st스테이지 승리 팀과의 불공평성등이 내외에서 논의를 불렀다.또, 2004・ 05년 모두에 제1 스테이지 승리 팀이 일본 제일이 된 것으로, 센츄럴 리그 우승 팀과의 불공평성도 논의되었다.

이 결과, 2006년 시즌으로는 이하의 변경을 했다.

  • 제2 스테이지에서는, 레귤러・시즌 1위 팀에 무조건으로 1승의 어드밴티지(☆)가 주어진다.이 때문에, 제2 스테이지는 4전제가 되었다.덧붙여 사용 구장은 제1・2전이 레귤러・시즌 1위 팀의 본거지, 제3・4전이 제1 스테이지 승자의 본거지.
  • 레귤러・시즌과 같게 예고 선발이 설치된다.

또, 레귤러・시즌으로의 순위가 동률이 되었을 경우, 이하의 차례로 순위를 결정하게 되었다.

  1. 해당 팀간의 대전 성적
  2. 전년의 순위

이것에 의해, 2004・05년의 방식에 있어서의 「예외」는 이하와 같이 바뀌었다.

  • 승률 1위 팀이 2 팀 있는 경우, 위의 방식에 의해 1위와 2위를 결정해 2위와 3위로 제1 스테이지를 실시한다.이것에 의해, 제1 스테이지도 반드시 실시하게 되는 것과 동시에, 이미 3위가 확정되어 있는 팀이 1위 팀에 지는 것에 의해서, 자신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결정된다, 라고 하는 모순은 해소되었다.[5][6]
  • 승률 2위・3위의 팀이 2 팀 있는 경우도 이와 같이 순위의 상하를 결정하므로, 2위끼리의 제1 스테이지나, 3위끼리로의 3위 결정전은 폐지되었다.

덧붙여 2007년부터 이 형식을 본떠, 세・파 양리그에서 클라이막스 시리즈가 개시되는 것이 결정되어, 2004년부터 퍼시픽 리그만으로 행해진 플레이오프제는 3년간에 종료가 되었다.

2004년~2006년도의 대전 성적

※팀명에 계속 되는 괄호내는 레귤러 시즌의 순위.승리 팀명 가운데, 당시리즈 우승(일본 시리즈에 출장)한 팀은 굵은 글씨로 나타내 보인다. 경기 성적표의 「A」에 대하고,☆는 어드밴티지에 의한 1승을 나타낸다.

개최년 스테이지 개최 구장 승리 팀 성적 경기 성적표 패전 팀
명칭 시합제 A 1 2 3 4 5
2004년
상세
제1 3 세이부 돔 세이부(2위) 2승 1패 일본 햄(3위)
제2 5 후쿠오카 돔 3승 2패 다이에(1위)
2005년
상세
제1 3 지바 마린 스타디움 롯데(2위) 2승 0패 세이부(3위)
제2 5 후쿠오카 Yahoo! JAPAN 돔 3승 2패 소프트뱅크(1위)
2006년
상세
제1 3 인보이스 SEIBU 돔 소프트뱅크(3위) 2승 1패 세이부(2위)
제2 4 삿포로 돔[7] 일본 햄(1위) 3승 0패 소프트뱅크
레귤러 시즌 순위별의 본시리즈 우승 회수
순위 우승 회수 해당하는 연도・팀
1위 1 2006년・일본 햄
2위 2 2004년・세이부
2005년・롯데
3위 0  

센츄럴 리그

센츄럴 리그로는 이전, 공식전 전일정 종료시점으로 승률(혹은 승리수)이 복수 구단에 대해 동률(동수) 1위였던 경우, 3 시합(2전 선승) 제의 플레이오프를 실시하는 취지를 정하고 있었지만, 과거 실시에 이른 케이스는 없다.1990년부터 2000년까지는 무승부재시합 제도가 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오프 실시의 필요가 생길 가능성이 높았지만 실현되지 않았다(당시의 실례는 차절에서 후술).

또 2001년부터 2006년까지 6 시즌의 사이는, 공식전 전일정 종료시점으로 승리수 1위의 팀과 승률 1위의 팀이 다른 경우에도 플레이오프를 실시하는 취지를 정하고 있었지만, 이쪽도 결국 실시에는 이르지 않았다.

  • 도입 초년도의 2001년은 승리수를 우선했기 때문에, 시즌중은 시합의 소화 페이스가 빠른 구단이 상위가 되어, 또 순위표에 대해도 승리수와 승률의 2개의 순위를 표기하지 않으면 안되어, 다소든지의 혼란을 북 했다.
  • 2002년부터는 승률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고쳤다.단, 승리수가 많아도 승률 순위로 3위를 밑돌았을 경우는 플레이오프의 진출 자격을 상실해, 승률 1위의 구단이 리그 우승이 된다(이 경우에서도, 승리수로 승률 2위의 구단을 밑돌았을 경우는 플레이오프를 실시한다).또 승률이 줄섰을 경우는 승리수가 많은 구단의 우승으로 한다.
  • 덧붙여 2007년에 클라이막스 시리즈(전제)가 도입되었을 때의 규정은 「레귤러 시즌의 순위는 승률에 의해서 결정한다」라고 정해져 있어 만일 동률로 순위가 줄섰을 경우는, 우선 「해당 구단간의 대전 승률이 높은 순서」를 우선한다.이 케이스로 시즌중의 대전 성적이 동률이었던 경우는 「전년도 순위의 상위」를 우선한다.클라이막스 시리즈의 출장 구단도, 이 규정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
    • 2010년에는 양리그를 통해 처음의 「1위 동률」의 가능성(쥬니치 드래곤즈한신 타이거스)이 있었지만, 한신이 최종의 요쿄하마베이스터즈전에 졌기 때문에 그것은 안 되었다.단지 이 경우에서도 상술의 규정이 적용되기 위해 중일의 우승이 되고 있었다(기본적으로 승점 총수→직접 대결 성적→전년도 순위의 순서.만일 직접 대결의 성적도 줄섰을 경우도, 전년도의 순위〔중일 2위, 한신 4위〕가 우선되므로 중일의 우승이 되고 있었다).

플레이오프 실시의 가능성이 생긴 케이스(☆표는 무승부재시합 제도 있어)

일본 프로야구로는 2005년까지, 각 리그 공식전의 전일정 종료시점으로 복수 구단의 승률(혹은 승리수)이 완전히 동일한 상태로 1위에 줄섰을 경우에는, 플레이오프를 실시해 리그 우승 구단을 결정하는 취지가 결정되고 있었다.또 센츄럴 리그로는 한시기, 승률 1위의 구단과 승리수 1위의 구단이 동일하지 않은 경우에도 플레이오프를 실시하는 취지를 결정하고 있었다(상술).

이러한 케이스로 플레이오프를 실시할 가능성이 생긴 것은 과거에 몇 번인가 있었지만, 실제로 플레이오프를 실시하기에 이른 케이스는 한번도 없다.아래와 같이에 이것들 케이스가 생긴 시즌에 대해 개설한다.

1946년의 1 리그 시대

이 해는 그레이트 링이 65승 37패 2나누어(승률. 637), 거인이 64승 38패 2나누어(승률. 627)으로 최종전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거인이 이겨 그레이트 링이 지면 65승 38패 2나누어(승률. 631)으로 나란해지기 위해, 플레이오프가 실시되게 되어 있었다.그러나, 거인이 세네타스에 졌기 때문에, 그레이트 링이 중부 일본전을 기다리지 않고 구단 사상최초의 우승을 결정했다.

태평양은, 이 해전쟁 전부터의 기존 팀에서 플레이하고 있던 시라이시 토시오(겐 거인)와 후지이 이사무(겐 한신)를 입단시켰지만, 양선수의 귀속을 둘러싸 거인과 한신이 제소해 연맹이 조사중이었다.그 한중간에도 구애받지 않고 시합에 출장시켰다고 해서 몰수 시합을 4 시합 경험했다.이것에 의해 태평양이 그레이트 링으로부터 준 1승이 져 취급해 되었다.이것이 태평양의 패배 취급에 되어 있지 않으면 그레이트 링의 최종 성적은 64승 39패 2나누어(승률. 621)으로 거인과 동률이 되어, 플레이오프가 실시되고 있던 것이 되는[8].

1952년의 퍼시픽 리그

이 해는 예선 리그 18회+상위 4강결승 리그 4회의 통산 성적으로 우승을 다툰다고 하는 변칙적인 리그전이었지만, 난가이 호크스매일 오리온즈가 동승률로 시즌 종료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120 시합을 종료한 시점에서, 남해는 75승 44패 1나누어(승률. 630), 한편 매일은 75승 45패 0나누어(승률. 625)로 본래라면 남해 우승이지만, 순위 결정에 임하여 「최종 순위의 변동을 초래하는 우려가 있는 시합은 재시합을 실시한다」라고 하는 결정으로부터, 이 시즌 남해가 유일 갈라 놓은 다이에이와의 사이에 재시합을 실시하게 되었다.

만일 남해가 이 시합에 졌을 경우, 낭가이・마이니치 모두 75승 45패(승률. 625)로 나란해져 버려, 우승 결정전에 미루어질 가능성이 있었지만, 남해가 이 다이에이전을 제압해 퍼시픽 리그 첫 2 연패를 장식했다.

덧붙여 이 방식은 결승 리그 진출을 완수할 수 없었던 팀으로부터의 불만등으로, 이 년 까지에 폐지되었다.

1963년의 퍼시픽 리그

이 해는 초반부터 독주였던 남해와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치열한 우승 쟁탈을 펼쳐 10월 중순의 시점에서도 우승 팀이 정해지지 않고, 니시테츠가 남아 4 시합의 시점에서 남해는 85승 61패 4나누어(승률. 582)로 시즌을 종료.

82승 60패 4나누어(승률. 577)의 니시테츠는 남아 4 시합 모두가 킨테츠 버퍼로즈와 홈의 헤이와다이 야구장에서의 대전이며, 4 시합의 성적으로 1패 1나누어 또는 2패라면 남해의 우승, 3승 1패라면 플레이오프(3 시합 2승제), 3승 1나누어 또는 4연승이라면 니시테츠의 역전 우승이라고 하는 상태가 되었지만, 니시테츠는 4연승으로 역전 우승.

1966년의 퍼시픽 리그

이 해는 10월 6일에 선두의 남해가 79승 51패 3나누어(승률. 608)으로 전일정을 끝냈지만, 동일 시점에서 2위의 니시테츠가 75승 51패 8나누어(승률. 595)로 아직 역전 우승의 가능성을 남기고 있어 나머지 4 시합에 니시테츠가 전승하면 플레이오프라고 하는 상황이었다.그러나, 니시테츠는 초전이 되는 10월 9일의 토에이전에1-2에서 져 남해의 퍼시픽 리그 3 연패가 정해졌다.

1968년의 퍼시픽 리그

이 해는 2 연패를 목표로 하는 한큐와 2년만의 왕좌 탈환에 불타는 남해가 함께 남아 1 시합의 단계에서 79승 50패(승률. 612)로 나란해지고 있었다.최종전은 함께 10월 11일로, 한큐가 니시노미야에서의 도쿄 오리온즈전, 남해가 일본생명보험에서의 킨테츠전에서, 양팀의 최종전의 결과가 같았던 경우에 플레이오프를 할 가능성이 있었다.플레이오프는 10월 13일부터 3전 2승제로 행해질 예정으로 되고 있어 실시의 경우 일본 시리즈 개막도 10월 16일부터에 연기되게 되어 있었다.

우선 먼저 시작된 니시노미야에서 한큐가 9회말에 야노 키요시의 시기적절로 동점을 따라 잡아, 연장 11회에 야노가 이번은 솔로 홈런타를 날려, 도쿄에3-2 사요나라 승리.성급한 한큐 나인은 이 시점에서는 아직 우승이 결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니시모토 미유키 유우 감독을 헹가래했지만, 니시노미야의 시합이 끝난 8 분후에 일본생명보험에서 남해가 킨테츠의 스즈키 계시를 쳐부수지 못하고 져 한큐가 리그 2 연패를 달성했다.

남해의 감독 츠루오카 한 명은 이 최종전 후에 감독을 퇴임.재임 기간 23년간이었다.

1991년의 센츄럴 리그

이 해는 일시 한신을 제외한 5 구단이 24승・2 게임차이 이내에 북적거린다고 하는 혼전으로부터 히로시마와 중일이 빠져 나갔지만, 9월 30 일시점으로 68승 48패 2나누어(승률. 586)의 히로시마를, 중일이 3.5 게임차이(67승 54패 1나누어 승률. 554)로 뒤쫓는 전개가 되고 있었지만, 전년부터 무승부재시합 제도가 도입되어 게다가 아직 직접 대결을 6 시합 남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 후의 성적 여하로는 히로시마와 중일이 동률로 시즌을 끝낼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그러나, 10월 3일부터의 직접 대결 2 연전으로 히로시마가 연승해 우승에 크게 전진.9일부터의 직접 대결 2 연전이나 1승 1패로 극복한 히로시마가 13일의 한신전(더블헤더 제 2 시합)에서 우승을 결정했다.

1992년의 센츄럴 리그

이 해는 동리그에서 가장 플레이오프에 가까웠던 케이스이다.10월이 되어도 야쿠르트, 한신, 거인, 히로시마의 4 팀에 자력 우승의 가능성이 생기고 있었지만, 우선 히로시마가 우승 쟁탈로부터 탈락했다.

이 시점에서는 야쿠르트・한신・거인의 3 팀이 동률로 나란해질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거기서, 센츄럴 리그 사상최초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1회째의 「플레이오프 위원회」가 소집되어 2 팀 동률 때는 3전 2승제의 플레이오프, 3 팀 동률 때는 1 시합씩 대전 상대를 바꾸어 2패 한 팀이 탈락, 2 팀이 탈락할 때까지 반복하는 「삼파전 방식」(스모 대회파전과는 조건이 다르다)의 플레이오프를 실시하는 것이 우선 결정되었다.그 후 거인이 탈락.

이 시점에서의 성적은 야쿠르트 68승 60패 1나누어(승률. 531), 한신이 66승 62패 1나누어(승률. 515)로, 나머지 2 시합으로 코시엔으로의 직접 대결이 되었다.야쿠르트가 1승 하면 야쿠르트가 우승[9], 한신은 2연승하지 않으면 플레이오프에 반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거기서 2번째의 「플레이오프 위원회」가 소집되어 「3전 2승제로 해, 제1 시합은 코시엔, 제2 시합은 신궁과 각각의 홈에서 1 시합씩 해내, 만약 1승 1패의 경우의 결승전=제3 시합, 혹은 우천 중지의 예비 회장은 일본 시리즈가 10월 17 일개최에 강요하고 있는 것 등에 입각하고 도쿄 돔을 빌려 실시한다」라고 하는 결정이 정해졌다.그러나, 그 2 연전의 최초의 시합에서 야쿠르트가 이겨 리그 우승.센츄럴 리그 첫 플레이오프는 행해지지 않았다.

1994년의 센츄럴 리그

이 해는 거인이 독주해 8월 18일에 이미 매직 25를 점등시켜, 24일에는 중일에 9.5 게임 차이를 냈지만, 다음날부터의 20 시합으로 4승 16패와 급실속.이전을 14승 7패로 극복한 중일에, 9월말의 시점에서 66승 59패(승률. 528)과 대등해져 버렸다.남은 시합은 함께 5 시합.10월 1일・2일은 함께 승리를 거듭했지만, 4일의 야쿠르트전에서 중일이1-4에서 져 다음 5일에는 거인이 야쿠르트에6-0에서 우수했다.이 때문에 거인이 6일의 야쿠르트전에서 이겨, 중일이 6일의 한신전과 8일의 거인전에 연승하고, 양팀이 함께 70승 60패(승률. 538)으로 시즌을 종료하든가, 혹은 거인이 6일의 야쿠르트전에서 져 중일이 6일의 한신전에 져 8일의 거인전에 이겨, 양팀이 함께 69승 61패(승률. 531)으로 시즌을 종료할까로, 플레이오프에 반입될 가능성이 나왔기 때문에, 센츄럴 리그는 임시의 플레이오프 위원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6일의 시합으로 중일은 한신에10-2에서 우수했지만 거인이 야쿠르트에2-6에서 진 결과, 나머지 1 시합으로 양팀이 69승 60패(승률. 535)로 나란해졌기 때문에, 8일의 직접 대결이 자웅을 결정하는 일전이 되어, 플레이오프는 실현되지 않았다(당시는 무승부재시합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양군이 8일의 대결로 갈라 놓았을 경우, 재시합이 실시되게 되어 있었다).덧붙여 최종전은6-3에서 거인이 승리했다.

1996년의 센츄럴 리그

이 해는 초반부터 히로시마가 독주했지만, 7월 6일의 시점에서 11.5 게임 차가 나고 있던 거인이 메이크 드라마로 불리는 맹렬한 뒤쫓음을 보여 10월 5일의 시점에서 남아 2 시합으로 75승 53패(승률. 586)으로 해, 우승에 마지막 수단을 쓰고 있었다.그러나, 거인과 같이 맹렬한 뒤쫓음을 보인 중일은, 동일 현재 나머지 3 시합으로 72승 55패(승률. 567)이어, 직접 대결도 2 시합 남아 있던(즉, 거인의 나머지 2 시합은 함께 중일전에서 만난) 일로부터, 중일이 남아 3 시합에 전승하면 양팀이 75승 55패(승률. 577)으로 나란해지기 위해, 플레이오프가 실시되게 되어 있었다.그러나, 거인이 10월 6일의 직접 대결 제 1 라운드에 승리하고 우승을 결정해 플레이오프는 환상이 되었다.덧붙여 이 시합이 나고야 구장 마지막 공식전에서 만났다.

2001년의 센츄럴 리그

센츄럴 리그로는 이 해부터 승리수 1위 구단과 승률 1위 구단이 다른 경우는 플레이오프를 개최하게 되어 있었다.이 때문에, 신문지상에서는 승률 1위가 확정했을 때에 0이 되는 「승률 1위 결정 매직」이라고 승률 1위와 승리수 1위가 확정했을 때에 0이 되는 「우승 결정 매직」의 2개가 등장했지만, 승률 1위 결정 매직이 0이 되었는데 우승 결정 매직이 0이 되지 않았던 경우에 플레이오프가 개최되게 되어 있었다.

그 초년이 된 2001년은 거인이 75승 63패 2나누어(승률. 543)으로 시즌을 끝냈지만, 야쿠르트는 10월 4 일시점으로 74승 55패 6나누어(승률. 574)에서 만났다.이 시점에서 야쿠르트는 5 시합을 남기고 있었지만, 만일 남아 5 시합에 전패하면 74승 60패 6나누어(승률. 552)되어, 야쿠르트의 승률 1위는 정해져 있었지만 승리수로는 여전히 거인이 웃돌기 위해, 야쿠르트가 남아 5 시합으로 1승이나 할 수 없었던 경우에 플레이오프가 실시되게 되어 있었다.그러나 야쿠르트는 10월 6일에 요코하마를 꺾고 우승을 결정해 플레이오프는 실시되지 않았다.

덧붙여 2001년의 순위 결정은 승률은 아니고 승리수를 우선해, 승리수가 같은 경우는 승률순서로 결정하고 있었지만, 팬으로부터 악평을 샀기 때문에 2002년부터 원래의 승률 우선에 되돌렸다(단 전술한 승리수 1위면서 승률 3위 이하의 팀을 우승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변경된 이외, 플레이오프 제도의 변경은 하고 있지 않다).또, 이 해는 이 룰이었던 일이 화가 되어, 승률로 요코하마를 웃돌고 있던 히로시마가 승리수로 밑돌아 버려, 요코하마가 3위(69승 67패 4분 , 승률. 507), 히로시마가 4위(68승 65패 7분 , 승률. 511)이라고 하는 사태가 발생해 버린[10].

2005년의 센츄럴 리그

이 해는 9월 8 일시점으로 한신이 72승 49패 5나누어(승률. 595, 나머지 20 시합)으로 선두에 있었지만, 중일도 69승 52패 1나누어(승률. 570, 나머지 24 시합)으로 쫓고 있어 성적 여하로는 한신이 승률 1위가 되어도 중일이 승리수 1위로 시즌을 끝낼 가능성이 있었다.그 때문에, 플레이오프 위원회가 9월 9일15일에 개최되어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1회전 코시엔, 2 회전 이후 나고야 돔이라고 하는 일정에 개최되는 것이 결정되었다.그러나 9월 10일에 한신에 승률 1위 결정 매직 15, 13일에 우승 결정 매직 13이 점등.29일에 한신의 우승이 정해져, 센츄럴 리그 첫 플레이오프는 다시 또 환상이 되었다.

각주

  1. ^연간 최고 승률이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할 수 없었던 케이스는 발생하고 있지 않다.
  2. ^ 1983년은 세이부가 2위와 17 게임차이, 1984년은 한큐가 8.5 게임차이, 1985년은 세이부가 15 게임 차이를 내 시즌을 종료했다.
  3. ^일반 토너먼트의 준결승.없고는 3위 결정전에 해당
  4. ^일반 토너먼트의 결승전에 해당
  5. ^예를 들면 이미 3위가 확정되어 있는 갑이, 이 시합에 지면 병과의 동률 1위가 확정하는 을과 대전했을 경우, 만일 갑이 을에게 승리하면, 1위가 을・병의 2 팀이 되므로, 플레이오프는 이 2 팀만이 싸워, 3위갑은 진출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반대로 갑이 을에게 지면, 1위을, 2위병, 3위갑, 이 되어, 진출할 수 있게 된다.이와 같이 「지는 것이 팀에 있어서의 이익(즉 플레이오프 진출)이 된다」라고 하는 가짜 승부를 조장 할 수도 있는 제도상의 미비가 있었다.실제, 2005년의 퍼시픽 리그는 3위가 확정되어 있던 세이부가 소프트뱅크에 지는 것으로, 소프트뱅크의 단독 1위가 결정, 3위 세이부 플레이오프 진출 결정이 되었다.
  6. ^플레이오프는 아니지만, 일본 프로야구 초년도의 1936년에도, 「지는 것이 팀에 있어서의 이익이 된다」라고 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었다.상술한 대로 1936년은 대회로의 우승 팀에게 줄 수 있는 승점이 가장 많은 팀이 우승이었지만, 거인 2.5, 오사카 타이거스 2로 맞이한 마지막 대회에서, 거인은 이미 우승 쟁탈로부터 탈락해, 대조적으로 오사카는 우승에 크게 전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인 우승을 위해서는 오사카와 우승 쟁탈을 펼치고 있던 한큐에 져 오사카 타이거스의 단독 우승을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결과적으로 거인은0-3으로 한큐에 패배해, 오사카 타이거스의 승점을 0.5에 세워 시즌 우승 결정전에 반입해, 거인이 그것을 억제해 일본 프로야구 사상최초의 시즌 왕자에 빛났다.
  7. ^ 2006년 2 nd스테이지는 제1전・ 제2전을 삿포로 돔, 제3전・ 제4전을 야후 돔에서 개최하게 되어 있었지만, 2전에서 종료했기 때문에 야후 돔에서의 대전은 행해지지 않았다.
  8. ^덧붙여 이 해의 메이저 리그 야구세인트루이스・카디널스블룩 인・다저스의 2 팀이, 당시의 최종전이 되는 154 시합을 끝낸 시점에서 96승 58패(승률. 623)으로 나란해졌기 때문에, 2 리그 체제 확립 후 첫 플레이오프가 실시되었다.그 때문에, 거인과 그레이트 링의 사이에 플레이오프가 실시되고 있었을 경우, 일미 동시에 플레이오프가 실시되고 있던 것이 된다.
  9. ^당시는 무승부재시합이며, 양팀의 1무승부는 9월의 직접 대결로 연장 15회 무승부에 의하는 것
  10. ^만약, 이 룰이 없으면 히로시마는 1997년 이래, 4년만의 A클래스들이를 달성해, 연속 B클래스(1998년~2012년)의 시즌도 이 해에 중단되게 되어 있었다.또, 1997년의 히로시마의 A클래스들이는 승률 5할을 밑돌고 있었으므로(97년은 66승 69패, 승률. 489의 3위) 히로시마로서는 그 전년의 1996년 이래(96년은 71승 59패, 승률. 546의 3위), 5년만이 되는 승률 5할 이상으로의 A클래스까지도가 이 룰의 탓으로 환상의 것이 되어 버렸다.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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