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0일 토요일

존재론

존재론

존재론(존재론, : ontology, 독일: Ontologie)은, 철학의 1부문.여러가지로 존재하는 것(존재자)의 개별의 성질을 묻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를 존재시키는 존재 되는 것의 의미나 근본 규정에 대해 임하는 것으로, 형이상학내지 그 한 분야로 여겨져 인식론과 대등한 철학의 주요 분야이기도 하다.

목차

개요

「존재론」의 원어는, 독일어로 Ontologie, 라틴어로 ontologia이지만, 이 표현은 그리스어로 einai라고 하는 동사의 현재분사로 해 「존재하는 것」(존재자)을 의미하는 「온」(on)과 「이론」을 의미하는 「로고스」(logos)을 묶고, 17 세기 초두 독일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 루돌프・고크레니우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1].그 후, 요한・곳간 우베 르크를 거치고, 크리스티앙・보르후에 이르러 용어로서 정착한[1].일본에서는, 1870년에 니시 아마네가 보르후의 Ontologie를 「리체학」이라고 번역한 것이 최초여, 이후, 「실체학」, 「본체론」, 「실재론」등 여러가지로 번역되어 1930년 후반 이후에들이 「존재론」의 역어가 정착해, 일반적으로 하이데가의 Ontologie에 대한 역어로서 이용되게 되었다.

존재론의 역사는 고대그리스에 거슬러 올라간다.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일 철학은 존재에의 물음을 명확하게 세운 것이어, 이후의 서양 철학의 중심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존재론이 차지해 왔다.

칸트 이후의 철학은, 인식론에의 심취를 보이지만, 제1차 세계 대전 후의 19 세기말부터 니코라이・할트만의 비판적 존재론이나 말틴・Heidegger기초적 존재론등에 의해서 「인식론으로부터 존재론에」라고 하는 모토의 아래에서 부활을 보이게 되었다.

역사

고대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기원 전 500년이나 기원 전 475년-몰년 불명)

파르메니데스는, 「있다」(희:estin)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 라고 하는 문제를 명확화한 최초의 인물로 되어 있는[2].그의 철학은 서정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그 해석은 한결같지 않지만, 그에 의하면,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세계는 생성 변화를 계속하지만, 원래 「변화」라고는 있는 것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이어, 없는 것이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파르메니데스는 감각보다 이성에 신뢰해 실로 있는 것은 불변이라고 생각했다.

  1. 철학은, 진리(희:Aletheia, 아레이테이아)의 길과 그러고 보니(희:doxa, 드크사)의 길로 나눌 수 있다.
  2. 이성(희:logos, 로고스)이 진리, 감각은 드크사의 길이다.
  3. 이성에 의하면, 「무」로부터 「유」가 생기거나 「유」가 「무」가 되는 것은 모순이지만, 현실의 존재자는 「있어, 한편, 없는」(희:einai te kai ouchi)이어, 생성 유전한다(희:gignesthai te kai ollysthai).따라서, 감각으로 파악되는 운동・변화・다되는 것은, 죽음 해야 할 인간의 드크사에 지나지 않는다.이것에 대해, 실로 「있다」라고는, 동시에 「없는은 있을 수 없다」(희:estin te kai hos ouk esti meeinai)이라고 하는 것이다.따라서, 실로 「있다」라고 무렵의 것은 연속 도대체・불생 불멸로 변화도 하지 않으면 운동도 하지 않는 전체적으로, 동질의 구체를 만들고 있다.이 전체는 헤라크레이트스와 같이 대립물의 합일 한 것은 아니다.왜냐하면, 대립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중에서도, 자연・만물의 근원에 대해 탐구한 이오 니어 학파, 지금까지의 미레 토스 학파와 달리, 우주론에 앞서, 「진리」를 물어, 이것을 현실의 존재자가 아니고, 존재와 묶는다고 하는 새로운 철학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Platon

Platon이데아론은, 파르메니데스의 불생 불멸의 생각과 헤라크레이트스의 만물 유전의 생각을 조화 시키려고 한 시도이다고 말해져 이 현실의 세계는 가상의 생성 유전하는 세계에서 만나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데아의 세계야말로 진실재이다고 해, 최고의 이데아는, 의 이데아이다고 해, 존재와 지식의 최고 원리이다고 했다.

Platon은, 「국가」편 제5권에 있고, 철학자는, 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대상은, 이데아의 세계의 「있는 것」인데 대해, 드크사를 안는 것에 지나지 않는 사람 사랑의 대상은, 가상의 세계의 「있어, 한편, 없는 것」이다고 하여 존재론과 지식을 연결시키고 있다.그에 의하면, 이 우주는, 신이 질료(휴레이)로부터 이데아를 범형으로서 제작한 것이며, 무로부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그의 우주내지 자연에 대한 견해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의 그것과 결정적으로 달라, 이것이 아리스트레스에 계승해져 가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기원 전 384년-기원 전 322년)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에의 물음을 명확하게 세워 체계화한 최초의 인물인[2].그는, 그 학문 체계를, 「논리학」을 모든 학문 성과를 손에 넣기 위한 「도구」(organon)이다고 한 다음, 「이론」(테오 리어), 「실천」(프라크시스), 「제작」(포이에이시스)에 3 분해, 이론학을 「자연학」과「형이상학」, 실천학을 「정치학」과「윤리학」, 제작학을 「시학」으로 분류했다.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형이상학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제일 철학」이며, 시작의 원리에 대한 지이다.즉, 존재자의 다양한 특성을 묻는 개별 과학과는 구별되어 게다가 정도에 자리 매김되는 궁극의 학문으로서 「존재자인 한으로의 존재자」, 「전체적으로의 존재자」, 즉 「존재란 무엇인가」를 묻는 학문을 구상해, 이것을 「제일 철학」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아리스트레스는, 우선, 도구인 논리학에 대하고, 「술어」(명제 「P는 Q이다」라고 할 때의 「Q이다」에 즈음한다)의 종류를 10의 카테고리에 구분해[3], 그 다음에, 형이상학에 있고, 존재자를 다의적인 물건이다고 하여, 존재를 카테고리에 따라서 10으로 분류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를 당시의 통념에 따라서 완전한 「구체」이며, 그것은 「하나」이다고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현실의 개체를 실체로 해, 「다양」인 존재를 카테고리에 따라서 분류해 체계화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저서 「형이상학」에 있고, 유를 무, 무를 유와 논증하는 것이 허위이며, 유를 유, 무를 무와 논증하는 것이 진이다고 했다.그곳에서는, 「유・무」라고 하는 「존재론」이 기초에 있어, 이것을 「논증한다」라고 하는 「판단」이 지지하고 있다.그곳에서는, 존재론이 진리론과 인식론과에 나누기 어렵게 연결시킬 수 있고 있다.

그의 학문 체계는, 그 후, 토마스・아크나스등을 개입시켜 고대・중세의 학문 체계를 규정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는, 인식론적인 문제는 항상 존재론과 나누기 어렵게 결부되고 있었다.그 때문에, 형이상학의 중심적인 문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항상 존재론이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가 형상과 결부되고, 그 가능성을 실현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듀나미스」와「에네르게이아」없고 「엔테레케이아」의 개념을 구별하는 것에 의해서 행했지만, 중세의 스콜라 철학으로는, 이 구별이, 「00이 무엇으로 있을까」라고 하는 「본질 존재」(essentia)과 「00이 있을까 없을까」라고 하는 「사실 존재」(existentia)의 구별로서 개념화 되어 「본질 존재의 우위」가 말해지게 되었다.이것들은00이라고 하는 사실에 이데아내지 에이드스라고 하는 본질이 우선한다고 하는 생각인 점으로 공통되고 있어 모두 신에 의해서 모델에 따라서 제작내지 창조된 우주・자연이라고 하는 견해와 연결되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는, Platon의 이데아론을 어렵고 집요하게 비판했지만, 그 간주요부분은 결코 손놓지 않은 것이었다.

중세

안세룸스

 
안세룸스(1033년-1109년)

안세룸스는, 이성에 의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한[2].그의 신의 존재 증명은, 「프로스로기온」의 특히 제2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으로, 대체로 이하와 같은 형태를 취한다.

  1. 신은 그 이상 큰 것이 없는 듯한 존재이다.
  2. 일반적으로, 무엇인가가 인간의 이해중에 있는 것 만이 아니고, 실제로(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다.
  3. 만약 그러한 존재가 인간의 이해중에 있는 것만으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면, 그것은 「그 이상 큰 것이 없다」라고 하는 정의에 반한다.
  4. 거기서, 신은 인간의 이해중에 있는 것 만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한다.

토마스・아크나스

 
토마스・아크나스(1225년경- 1274년)

토마스・아크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을 승계하면서도, 게다가로 기독교 신학과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새로운 생각을 덧붙이고 그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forma-materia)과 「현실태-가능태」의 구별을 받아 들인다.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존재자에게는 「질료인」과「형상인」이 있지만, 존재자가 무엇으로 되어 있을지가 「질료인」, 그 실체・본질이 「형상인」이다.존재자를 동태적으로 보았을 때, 잠재적으로는 가능한 것이 「가능태」이며, 그것이 생성한 것이 「현실태」이다.「형상-질료」는 주로 질량을 가지는 자연계의 존재자에게 한정되지만, 「현실태-가능태」는 자연계를 초월 한 질량을 가지지 않는 형상만의 존재자에게까지 미친다.모든 존재자는 가능태로부터 현실태에의 생성 유전의 변화가운데 있지만, 모든 존재자의 궁극의 원인이며, 질료를 갖지 않는 순수 형상이 「신」(부동의 동자)로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토마스에 있어서, 신은, 만물의 근원이지만, 순수 형상 에서는 있을 수 $다.구약 성서의 「출 이집트기」 제3장 제 14절로, 신은 「 나는 있어라고 있는 것이다」라고의 계시를 모세에게 주고 있기 때문이다.거기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에 수정을 더해 「존재-본질」(esse-essentia)을 더했다.그에 의하면, 「존재」는 「본질」을 존재자와 하기 위한(해) 「현실태」이며, 「본질」은 그 만큼으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태」이다.「존재」는 어떠한 때에 있어도 「현실태」이다.신은, 자존 하는 「존재 그 자체」이며, 순수 현실태이다.

인간은, 이성에 의해서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이른바 우주론적 증명).그러나, 유한한 인간은 무한한 신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성에는 한계가 있다.무엇보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은총의 빛」과「영광의 빛」이 주어지는 것에 의해서 지성은 성장해 신을 인식할 수 있게 되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은총의 빛만 주어지므로, 사람에게는 신앙・사랑・희망의 인도가 필요하게 된다.사람은 죽음 하고 처음으로 「영광의 빛」을 얻어 신의 본질을 완전하게 인식하는 것이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토마스는, 존재론에 근거하는 신중심 주의와 이성과 신앙에 근거하는 인간 중심 주의의 통합을 도모해, 후세의 존재론에 다대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근세

라이프닛트와 보르후

(화상왼쪽)라이프닛트 1646년- 1716년(화상 오른쪽) C・보르후(1679년- 1754년)

존재론을 처음으로 철학 체계에 집어 넣은 것은, 18 세기 독일의 크리스티앙・보르후이다.그는, 라이프닛트표상 개념을 기초로 한 체계적인 형이상학을 구축했으므로, 그와 그 후계자의 철학은 「라이프닛트=보르후 학파」라고 말해지는 일이 있다.그의 학문 체계는, 철학을 이론적 철학과 실천적 철학과로 나누어 전자를 「형이상학」이라고 불러, 이 형이상학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존재론, 합리적 심리학, 우주론, 합리적 신학을 내걸었다.이 (안)중으로 존재론은 「존재자가 존재하는 한에 둔 존재자 일반의 학」이며, 우월한 특수한 존재자(신이나 영혼)를 취급하는 특수 형이상학(합리적 심리학, 우주론, 합리적 신학)에 「앞선다」일반 형이상학으로서 자리 매김되었다.이와 같이 하고, 라이프닛트에 대해서는, 신의 존재 증명, 즉 신학과 나누기 어렵게 결합되고 있던 존재론을 분리해,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독립시켰던 것이다.

인식론에의 전환-칸트에 의한 비판

 
이마누엘・칸트(1724년-1804년)

칸트도 또 보르후와 같게 존재론을 자신의 철학 대계에 짜넣고 있지만, 보르후와 다른 것은, 존재론을 「인간의 선험적인 인식의 제원리・제요소의 철학」(선험철학)이라고 말해, 존재자를 오성으로 분석하는 차원으로부터, 대상의 선험적인 「인식」의 차원으로 전환한 점에 있다.즉, 존재론의 정립은 자명한 것이 아니고, 원래 인간의 유한한 인식에 의해서 존재론적 인식이 가능한가 아닌가를, 비판에 의해서 확정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다고 했던 것이다.그는,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이율배반) 중 하나로서, 세계의 제일 원인과 신의 존재 증명을 들어 라이프닛트=보르후 학파의 형이상학, 그 배후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아크나스적인 신학 그 자체를 비판했던 것이다.이 칸트의 비판 철학에 의해서, Schopenhauer가 「 「순수이성비판」은 존재론을 분석지론으로 바꾸어 버렸다」라고 지적한 것처럼, 철학의 중심은 인식론에 놓여지게 된다.

Hegel

 
Hegel(1770년- 1831년)

칸트는, 데카르트적인 주관/객관의 2항대립 도식을 전제로 하면서, 현상물자체를 엄밀하게 구별했던 것이다가, Hegel에 의해서 완성을 본 독일 관념론은, 이성에 의해서 현상과 물자체의 구별을 넘는 형태로 발전했다.

Hegel에 의하면, 칸트의 인식론은, 인식의 한계를 인식한다고 하는 순환론 법적인 논의이며, 그것은 마치 물에 들어가기 전에 수영을 배우는 것이다.칸트의 반성 철학의 잘못은, 2항대립 도식을 정적이고 고정인 물건이라고 생각한 것에 있어, 반성과는 「보는 자신」과「볼 수 있는 자신」을 구별하는 것부터 시작되지만, 자기의식의 구조로부터 판명되도록(듯이), 양자가 동일한 것을 「자신」은 알고 있다.그는, 이것을 「구별이 없는 구별」이라고 불러, 무한이라고 하는 동적인 관점을 들어갈 수 있으면, 보는 자신/볼 수 있는 자신, 주관/객관이라고 하는 2항대립 도식 구조 그 자체가 소멸한다고 한 다음, 그것은, 신이 자신을 분열시키고, 본질을 현상 시켜 자기 인식을 달성하는 것에 의해서 그 만큼직물로부터 자신을 되찾아 동일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완수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Hegel의 존재론은, 변증법이라고 하는 논리학을 기초에, 인식론과 네오프라트니즘을 통합한다고 해야 할 것이지만, Hegel의 사후, Hegel 학파는 분열・대립을 반복해 붕괴해, 오히려 철학의 위기의 시대를 불렀다.

현대

존재론의 복권

칸트 이후의 철학은 인식론에의 심취를 보였지만, 19 세기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 후의 존재론은, 「인식론으로부터 존재론에」라고 하는 모토의 아래에서 부활을 보인다.

대륙 철학

훗서르와 Heidegger, 할트만 독일 현상학의 조류

에틈트・훗서르는, 데카르트적인 주관・객관의 2항대립 도식을 넘은 노에시스/노에마 구조를 본질로 하는 지향성 의식에 대한 인식론적 고찰과 지향 대상으로 한 존재자에게의 고찰을 현상학적 환원을 개입시켜 비판적으로 기술하는 것으로써, 한정적이면서도 존재론에의 길을 열었다.무엇보다, 훗서르의 존재론은 어디까지나 인식론의 범위내에서의 물건이며, 그 마지막으로 소극적인 것이다.

 
말틴・Heidegger(1889년- 1976년)

20 세기에 존재론의 복권을 고들로 내건 것이, 말틴・Heidegger이다.그는, 주서 「존재와 시간」에 있고, 서양 철학의 근본을 이루어 온 것은, 「존재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물음이지만, 종래의 존재론(형이상학)은 그 물음에 대해서 신이나 자연이라고 하는 존재를 꺼내 응하려고 왔다고 한다.즉, 종래의 존재론은, 「존재자」(das Seiende)과 존재자를 존재자 늘어뜨려 째라고 있는 「존재」(das Sein)과의 구별, 즉 「존재론적 차이」를 망각했기 때문에 있다(존재 망각[4] Seinsvergessenheit).그는, 이 점을 비판해, 어디까지나 존재 그 자체의 「의미」를 물으려고 해, 그것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현상학을 채용해, 지향성을 「관심」(Sorge)이라고 불러, 「존재적」(ontischen)본연의 자세「존재론적(ontologisch)인 본연의 자세를 구별했다.그에 의하면, 모든 존재자중에서도, 존재론적인 본연의 자세에 대하고, 존재의 의미에 대하고 관심을 가져, 이해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이성 있는 「인간」뿐이지만, 「사람」(das Man, 세인)은, 일상에 대해서는, 존재 망각 때문에, 본래의 자기를 가지지 않고, 타인 일반적으로 지배되어 「세상」에 매몰 하고 있다.따라서, 존재 망각으로부터 벗어나, 존재 그 자체의 의미를 해명할 준비로서 인간인 현존재가 어떠한 구조를 가질까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하고 이 현존재의 분석론을 「기초적 존재론」(Fundamentalontologie)이라고 불러, 모든 존재자의 의미에 관한 존재론의 기초를 주는 것으로 했다.그에 의하면, 기초적 존재론은, 개인의 실존적 체험을 기초로 하지 않는 심리학적인 인간 분석이어 안되어, 또, 개인의 실존적 체험만을 기초로 하는 「실존적 분석」이어도 안되어, 이것과 구별된 「실존론적 분석」(existentiale Analytik)이 아니면 안된다.이 분석의 결과, Heidegger는, 현존재의 근본적 존재 규정인 「관심」의 의미가 「시간성」(Temporalitat)에 있다고 했다.Heidegger는, 현존재가 자기를 「시간화」하는 방법은 본래적인 그것과 비본래적인 그것의 두 개가 있어, 거기에 응해 존재 이해도 바뀌어 오면 자설을 전개했다.존재의 의미가 바뀌면, 그 시점의 아래에서 볼 수 있는 존재자 전체의 본연의 자세와 그것과의 현존재의 관련되는 방법, 즉, 문화의 형성의 방법도 변화한다.본래적인 거기에 두어서는, 그 시간화는 우선 미래에의 선구로서 발생해, 거기로부터 과거가 반복되고 그리고 현재는 순간으로서 살 수 있지만, 존재 망각아래에 있는 세인은 비본래적인 그것안에 살아 있어 미래는 막연히 한 기대중에서 열려 과거는 망각되어 현재는 실제로 눈앞에 있는 사물에의 눈앞으로서 출현하는 것만으로 있다.따라서, 인간이 자기를 본래적으로 시간화할 수 있으면, 미래가 우월하는 긴밀한 시간의 흐름 중(안)에서, 반복되는 역사를 해체해, 현재의 순간을 자유롭게 사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그리고, Heidegger는, 철학의 역사, 모든 형이상학의 「해체」(Destruktion)을 시작한다.그에 의하면, 서양 철학의 역사는, Platon・아리스토텔레스에 기원을 가져, 스콜라 철학에 의해서 정식화된 「본질 존재의 우위」라고 하는 사상이 형태를 바꾸고 물건을 바꾸어 등장하는 것만으로 있어, 그것은 데카르트・칸트의 근세 철학으로부터 니체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진보도 변화도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그것은, 어떠한 본질에 의해서 제작되어 존재한다고 하는 우주・자연이라고 하는 견해이며, 인간 이외의 존재자, 우주・자연계의 존재자 모든 것을 「도구」라고 보는 인간 중심적인 「폐존」의 입장이다.그것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가 우주・자연을 기계적・도구적인 것이 아니고, 생생하게 한 스스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하는 견해를 하고 있던 것과 대조적이다.하이데가는, Platon으로 발단하는 위와 같은 견해에 근거하는 서양 철학의 역사 모든 것을 해체해, 존재 망각이 세력을 발휘하는 근대를 전환해, 역사를 지배하는 존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여 따르면서, 그것을 수 소장하는 것을 시도했던 것이다.후기 Heidegger의 철학은, 「고향의 상실[5]가 세계의 운명이 된다.그러므로에, 이 세계를 존재 역사적으로 사색 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하고, 일종의 정적 주의로 향했다.

니코라이・할트만은, 원래는 신칸트파에 속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훗서르의 현상학의 영향을 받고, 이것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이념적・의미적인 존재자도 자신의 존재론이 사정에 두는 등, 인식마저도 인간이 다른 존재자와 묶는 존재 관계의 하나로 간주해, 비판적 존재론을 전개했다.Heidegger의 기초적 존재론이 어디까지나 현상학을 방법론으로서 채용해, 그 사정내에 들어가고 있는데 대해, 할트만의 존재론은 인식론에 대한 존재론의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살톨과 메르로=폰티후란스 실존주의
 
살톨

독일 발상의 현상학은, 그 후, 프랑스에 있어 수용되었지만, 그 영향은, 훗서르 자신의 사상도 시기에 의해 다른 내용을 가질 뿐만 아니라, Heidegger에 있고는 현상학은 방법론으로서의 한정적인 의의를 가지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하다.살톨과 메르로=폰티가 누구의 어느 시기의 어느 저작을 읽고 영향을 받았는지가 양자의 존재론의 차이를 낳았다.살톨은 훗서르의 이데인 1권과 아직 존재론의 우위나 실존론적 분석의 우위가 결정하기 어려워 하고 있었던 시대의 Heidegger 밖에 읽지 않았지만, 메르로=폰티는 훗서르의 미완성원고를 포함한 후기 사상을 포함한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실존주의의 선조 살톨은, 주요 저서 「존재와 무-현상학적 존재론의 시도」(1943년)에 두고, 지금 확실히 살아 있는 자기 자신의 존재실존을 중심으로 하는 존재론을 전개했다.살톨의 사상은, 특히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불려 자신의 강연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일까」에 두고, Platon・아리스토텔레스에 기원을 가지는 「본질 존재가 사실 존재에 앞선다」라고 하는 전통적 형이상학의 정립을 역전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주장해, 「인간은 자유라고 하는 형에 처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만약, 모든 것이 무이며, 그 무로부터 모두의 만물을 창조한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신자신이 창조하는 것이 무엇으로 있을까를, 미리 분별하고 있을리이다.(이)라면, 모든 것은 현실에 존재하기 전에, 신에 의해서 앞서 본질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 된다.이 경우는, 창조주인 신이 존재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으므로, 「본질이 존재에 앞선다」된다.그러나, 살톨은 그러한 일절을 창조하는 신이 없는 것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라고 묻는다.창조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모든 것은 그 본질이(신으로) 결정되는 것이 없는 채, 현실에 존재해 버리게 된다.이 경우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것으로 되고, 이것이 인간이 놓여져 있는 근본적인 상황이다살톨은 주장하는 것이다.살톨에 있어서, 현상학에 의해서 파악되는 헤겔변호법의 근본개념의 하나 존재와 헤겔 변증법의 근본개념의 하나 존재의 당돌하고 무근거인 관계는, 즉시 존재의 환영적인 존재의 근거로 되어 있다.어쨌든, 그곳에서는 현상학에 환원 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실존이 문제로 되고 있다.

메르로=폰티는, 후기 훗서르의 생활 세계에 초점을 맞히고, 이것을 넘으려고 했다.그는, 「지각의 현상학」(1945년)에 두고, 지각・신체를 중심으로 자리잡아 환영지의 현상을 분석해, 자연주의와 관념론을 비판한다.그 전제가 되는, 데카르트적인 코기트에 있어서 「 나의 신체」는 세계의 대상의 하나이며, 만일, 그러한 전제가 올바르다고 하면, 나의 의식이, 객관적으로 없는 다리에 가려움을 느낄 것은 없을 것이다.그는, 데카르트적 전통을 계승하는 살톨과 같이 헤겔 변증법의 근본개념의 하나 주체, 헤겔변호법의 근본개념의 하나 객체를 명확하게 2분하는 것에 잘못이 있어, 양자를 불가분의 융합적 통일가운데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고 주장한다.주체에서도 객체이기도 한 것과 동시에 주체도 객체도 아닌 렬개의 중심인 두개의 의미적인 존재, 그것이 신체이다.생리적인 반사조차, 산 신체가 환경에 대해서 가지는 전체적 태도, 의미의 파악을 수반하고, 그 전체성은 결코 나의 반성적 의식에 환원해 다하여질 것은 없다.나와 세계의 사이의 신체에 의한 관계는, 전체적인 구조 일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발전하는 구조이기도 하다.그에게 있어서 헤겔변호법의 근본개념의 하나 존재와 헤겔 변증법의 근본개념의 하나 존재의 대립은, 이상과 같은 구조를 가지는, 보다 한층 깊은 매개의 소산이며, 여기에서는 현상학보다 존재론이 우위 하는 것이다.

그 후, 프랑스의 현대 사상에 대하고, 살톨과 크러드・레비=스트로스의 논쟁을 계기로, 1960년대에 들어와 구조 주의가 대두하지만, 메르로=폰티의 신체론은 구조 주의의 준비내지 그 중개가 되었다고 평가하는 방향도 있다.

신토마스주의

토마스의 사상은, 근대적 인식론의 성립에 의해, 급속히 쇠약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가, 19 세기가 되면, 신토마스주의의 존재론으로서 부활했다.

신토마스주의에는, 인격신인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 신학적인 입장을 전제로, 토마스의 철학을 연구하려고 하는 것, 그러한 입장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해, 현대적인 철학・과학의 성과를 도입해 수정해야 할 점은 수정한 다음 토마스 철학을 연구하려고 하는 것의 둘에 크게 나뉜다고 해도 좋다.특히 논쟁이 되고 있는 점은, 칸트에 의한 비판 철학, 인식론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에티엔・질 손과 같이, 존재론에 대한 인식론적 우위를 인정해 버리면, 결국은 관념론에 도착해 버리는 것부터 하는 소극적인 입장과 오히려 토마스의 철학에는 인식론적으로 시사가 풍부하는 기술이 많다고 해 이것을 현대적으로 수정해 나가려고 하는 입장이 있다.

분석적 형이상학

논리 실증주의의 실패와 쿠와인

빈학단으로부터 시작된 논리 실증주의는, 결코 하나의 주장으로 굳어지고 있던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경험 주의를 기초에 실재론을 주장하는 것이 많이 있었다.그리고, 경험 주의의 전통에 대해서는, 진리란, 관념과 실재의 대응이며, 그 경우의 관념이란, 하나의 명사를 단위에 생각되고 있었다.카르납등의 논리 실증주의는, 이 단위를 하나의 언명에 옮겨놓았다.즉, 여기에서는, 직접적 경험에 의한 센스・데이터(감각 소여) 언어로 번역 가능하면, 이 언명은 유의미이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위라드・밴・오멘・쿠와인에 의하면, 이와 같이 실재와 관념의 대응을 하나의 명사, 하나의 언명 으로 분해해 가는 환원 주의는 불가능하고, 우리의 인식은 하나의 언어 체계이며, 따라서, 어떤 신념을 검증하기에 즈음해서는, 하나의 이론의 전체와의 관계로, 경험의 심판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되어, 그 코로 랠리로서 분석적 진리와 종합적 진리는 구별할 수 없는 것이다.쿠와인은, 이것을 「전체론」이라고 불렀지만, 이것에 의하면, 경험에 의한 개정의 가능성을 원리적으로 면책되고 있는 신념은 없고, 만약 대립하는 두 개의 이론이 있을 때는, 어떠한 경험에 의해서, 그 어느 쪽인지가 완전하게 부정될 것은 없고, 어떠한 신념에서도 계속 보관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논리 실증주의는, 철학에 수학, 논리학을 기초로 한 확고한 방법론을 기반으로 실험이나 언어 분석에 과학적인 엄정함을 요구해 존재론을 포함 형이상학적 문제를 철학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가, 쿠와인의 비판을 계기로 반론이 강해져, 철학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간주해지게 되었다.현재는 「분석적 형이상학」이라고 불리는 분야에서, 존재론 뿐만이 아니라, 시간・자유 등 전통적인 형이상학적인 토픽의 거의 모두에 임해서 분석 철학의 수법을 이용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좋다.자세한 것은, 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가 있는지를 참조.

메타 존재론

메타 존재론으로 불리고 있는 논의로는,「무엇이 존재하는지, 라는 물음에 객관적인 대답은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물음에 대해서, 이것을 긍정하는 「존재론적 실재론(ontological realism)」이라고, 부정하는 「존재론적반실재론(ontologicalanti-realism)」가 대립하고 있다.

존재론의 현재와 미래

독일에서는, 전후 당분간의 사이는 Heidegger가 학파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든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1960년무렵부터, 이른바 「독일 사회학의 실증주의 논쟁」을 거치고, 영미계의 언어 철학, 과학 철학, 현대적 인식론의 발전의 성과를 수용하는 흐름이 독일 철학회로는 강해져, 하이데가의 영향력은 감퇴 하고 갔다.

경험론, 프라그마티즘의 전통아래, 논리 실증주의, 분석 철학이 발전해, 형이상학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는 영미계의 철학으로는, 특히 Heidegger를 평가하는 방향은 적은 것 같지만, 근년, 존재론도 포함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약간 형태를 바꾼 형태로 논의되어 분석적 형이상학으로 불리고 있다.영미계의 철학으로는, 쿠와인의 주장이 이후의 존재론의 흐름을 방향 지었다.존재론은 인식론과 같이 자연화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겨져 이른바 존재론적 문제는 자연과학에 의해서 해답이 주어져야 할 것이며, 그 프로젝트는 과학자가 공동 해 수행해 나가는 것이라는 되었던 것이다.그곳에서는, 전문 훈련을 받은 과학자가,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물리학의 철학, 생물학의 철학이라고 한 개별의 분야 마다 존재론적 문제를 논해 가게 된다.그러면 존재론은 단지 과학의 카즈아키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역시 철학 고유의 문제는 계속 남는 것 일까.이 점에 대해서는, 현재도 긍부양론의 입장으로부터 논의가 계속되고 있어 그 해결은 미래에 남겨진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 a b 「이와나미 철학 소사전」 「존재론」의 항목
  2. ^ a b c 후게카토
  3. ^「카테고리론」 제4장
  4. ^Heidegger는, 존재(있다)와 존재자(있는 것)를 명확하게 구별한다.존재 망각과는, 인간은 이미 「존재(있다)」란 무엇이지도와 묻는 일도 없어져, 존재자(있는 것)로서의 자신을 고집하고 있는 것.(시미즈 서원 「용어집 윤리 최신 제 2판」195페이지 「존재 망각」)
  5. ^고향 상실이란, 존재자(있는 것)로서의 자신을 고집해, 진짜 자신과 그 근거(즉 존재(있는 것))(을)를 잃어 살아 있는 것.「세인(사람)」에 퇴락(싶은들 구) 하고 있는 것.(시미즈 서원 「용어집 윤리 최신 제 2판」195페이지 「고향 상실」)

참고 문헌

문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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