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3일 수요일

이와타 히사시2수컷

이와타 히사시2수컷

이와타 히사시2수컷(이와타 나라, 1906년 5월 25일- 1994년 11월 29일)은, 오사카 출생의 곤충학자생태학자.학위이학 박사(교토 대학)이다.

목차

인물

츠네키 카츠지와 함께 일본에 있어서의 곤충의 행동 연구의 개척이며, 벌류의 습성 연구를 거의 생애의 과제로 했다.고교생(구제) 시대부터 고독성의 사냥벌이나 꽃벌의 습성 연구를 실시해, 특별히 사냥해 벌의 습성 연구를 발전시켰다.이와타의 실적으로 특필되는 것은, 개개의 종의 습성(행동 behaviour의 연쇄인 habit )의 기술 뿐만 아니라, 번식 습성의 요소를 5개의 단위 습성으로 분류해, 종간의 습성을 보편적과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어, 이것에 의해서 이 분야는 근대적인 진화 생태학동물행동학에 발전하는 이치의 하나를 얻었다.

한편으로 이와타는 문인적, 시인적, 예술가적 재능에도 풍부해, 최첨단의 과학이나 이론과는 약간 떨어졌더니 평가를 얻는 것으로도 되었다.학술 논문이나 총설류 외에 일반용의 관찰 수기나 아동 전용의 과학 읽을 거리도 많이 남기고 있지만, 이러한 저작은 이른바 내츄럴리스트로서의 용모를 느끼게 해 「들의 시인」이라고도 칭 다투어졌다.이것으로부터 일부에서는 「일본의 Fabre」라고 불리고 있어 일면에서는 과학자로서의 실적의 측면과 그 의의를 보이기 어렵게 시키고 있다고도 말해진다.

연구논문의 대상종을 증명하는 증거 표본의 상당수는 모교의 교토 대학에서 표본의 보존 관리 체제가 뛰어난 큐슈 대학 농학부에 기증되어 또 만년이 될 때까지 정력적으로 계속된 곤충의 생태 관찰의 방대한 증거 표본은, 효고현립인과 자연의 박물관에 유증되고 있다.단지, 키하라 생물학 연구소의 해남도 출장소에서 행해진 면화밭의 곤충의 상호작용 연구나 동시에 이루어진 벌의 행동 연구의 자료나 증거 표본은 패전과 함께 중화 민국에 접수되어 현재 행방불명이 되어 있다.

경력

  • 1906년-오사카시 선착장에서 태어난다.
  • 1910년-토시마군 이케다마치(후이케다시)에 이사.
  • 1913년-오사카부 이케다 사범 학교의 대용 부속 초등학교(후오사카 교육 대학 부속 이케다 초등학교)에 입학.
  • 1917년-아버지를 잃어 경제적으로 핍박한다.
  • 1919년-오사카 후리츠 키타노나카 학교(후오사카 후리츠 키타노타카등 학교)에 입학.
  • 1923년-오사카 고등학교 이과을류에 입학, 요즘보다 벌류의 관찰을 시작한다.
  • 1928년-교토 대학 농학부 곤충학 강좌에 들어간다.졸업 후는 그대로 무급부사로서 잔류.
  • 1934년-후쿠이현립 타케후 고등 여학교(후후쿠이현립 타케후 고등학교)의 교사가 된다.
  • 1937년-일자리를 물러나, 대만에.항춘의 임업 시험 출장소에 장기 임시거처.이 땅에 자리잡는 결단을 하지만, 그것을 (들)물은 여동생의 약혼자의 카니 후지요시등의 기능에 의해 데리고 돌아와진다.
  • 1939년-오사카 후리츠 타카츠 중학교(후오사카 후리츠 타카츠 고등학교) 교사.
  • 1942년-재단법인 키하라 생물학 연구소(현요코하마시립 대학 키하라 생물학 연구소)의 출장소가 해남도에 만들어지게 되어, 이것에 참가.전지에의 부임이기 위해, 이것에 앞서 유서의 의미를 담고, 학위 논문의 내용을 포섭한 「벌의 생활」(1940년 출판)과 스스로의 현지조사를 기록한 「자연관찰자의 수기」(1944년 출판)을 쓴다.
  • 1944년-교토 대학 이학 박사 「Comparative studies on the habits of solitary wasps(단독성 수렵벌의 비교 습성 학문적 연구)」.
  • 1946년-패전에 의해 3월에 귀국.9월부터 출신 중학교의 교사.
  • 1948년-가가와현립 농업 전문학교(후가가와 대학 농학부) 교수
  • 1950년-탄바의 효고현립 농과 대학교수에.요즘부터 히메바치류에 관심을 가진다.
  • 1967년-대학의 국립 이관(코베대학학)에 수반해, 코베대학 마나부 교수에게.그것과 함께 코우베시 키타구 카라토다이에 새 주택을 짓는다.
  • 1969년- 4월에 코베대학학을 정년퇴직해, 주천 여자 단기 대학 교수.10월에 코베대학 학명예교수가 된다.
  • 1980년- 3월에 주천 여자 단기 대학 퇴직
  • 1977년-훈장수여 삼등서보장
  • 1983년-최종 저작이 되는 「 신・곤충기」를 출판
  • 1994년- 11월 29일에 체재지의 후쿠오카시에서 급성 심부전에서 사망.서마사시위.12월 10일에 코베대학학 타키가와 기념관에서 농학부 곤충 과학 교실장.

연구의 자세

그는 유년기로부터 여러가지 동물에 흥미가 있었다.벌류에 관심을 가진 이유에 대해서는, 저서속에서 구제 고교시절에 아메바히드라등 여러가지 생물에 대해 배우게 되었을 때, 그것들이 이미 생물학서에 실려 있는데 대하고, 그것들을 채집하러 갔을 때에 우연히 야마토하 기리바치의 둥지 만들기를 찾아내 그것이 어느 책에도 실려 있지 않은 것에 놀랐다고 하는 것을 들고 있다.또, 그 직후를 만난 Fabre 곤충기의 영향도 컸다고이다.1925년의 야마토하 기리바치의 관찰을 시작으로, 벌류의 습성 관찰에 빠져들어, 고등학교의 과정에서 두 번의 낙제를 하고 있다(첫번째는 벌을 만나기 전, 역시 야외에 나와 결석이 많았던 때문인것 같다).고교 졸업시에는 벌써 40종의 벌의 기록을 취하고 있었다(네 개의 신종을 포함한다).

그 후도 가는 곳마다 벌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곤충의 관찰을 실시해, 어떠한 때도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예를 들면 패전 후의 식량난의 시기에는 식료로서 도롱이 벌레(오오미노가)의 월동 유충을 모았을 때도, 이것에 붙는 기생 천벌을 14종 기록하고 있다.전후 일본으로 끌어올려 온 후의 1947년의 무렵부터, 대만이나 해남도와 같은 열대의 곤충의 다양성과 비교해서 일본의 곤충의 다양성이 퇴색해 보인 것, 오랜 세월 연구를 계속해 온 관서지방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사냥 천벌을 다 조사해 버리고 있던 것, 또 요즘부터 결혼을 해서 안정된 일정한 직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자유 제멋대로인 야외 연구에 돌릴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진 적도 있고, 히메바치류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곤충의 난소의 비교 해부학적 연구에 주력을 옮겨, 알사이즈나 장란수를 조사했다.이러한, 수천벌의 습성이라고 하는 어느 의미로 화려한, 그리고 야외 연구의 분야로부터 수수하고 실내 연구에의 전신은, 자주 의외성을 가지고 말해진다.이 히메바치 연구와 초기의 말벌 연구의 중개로서 성충에 의한 여관 주인인 조망성의 거미에의 산란전의 일시 마취와 유충의 외부 기생이라고 하는 말벌 같아 보인 생활사를 나타내는 쿠모히메바치류에 주목했지만, 그가 관찰할 수 있던 것은 고미그모히메바치와 쿠사그모히메바치의 2종에 머물렀다.이 분야는 그의 사후 21 세기가 되어 오사카시립 자연사 박물관의 마츠모토리수 츠카사등에 의해서 정력적인 연구가 개시되었다.

덧붙여 그의 만년의 수기(이와타, 1976)에서는, 히메바치 연구에 관해서, 난소의 조사로부터 그들의 산란능력이나 생존 기간에 대하고 추측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 이것을 바탕으로 향후의 전개에 대하고 희망을 기술되어 또 권말로는 향후의 자연관찰에의 의욕이 말해진다.회상으로 끝나 버리지 않는 근처에, 그의 인품이 보인다.

실적과 평가

그는 기본적으로는 야외에서 벌의 관찰을 실시해, 그 관찰 기록을 모아 이어 아울러 그 종의 번식 습성을 기록한다, 라고 하는 것을 생애에 걸쳐서 계속했다.거의 전모를 밝혀낸 종도 있으면, 단편적인 기록에만 끝난 종도 있다.그는 또, 많은 연구자와 교류를 가져, 국외의 벌의 습성에 관한 논문에도 넓게 대충 훑어보고 있다.그가 습성의 비교 검토를 실시한 벌은 1500종에도 미쳐, 그 일할이 그 자신의 연구에 의하는 것이었다.

생태학적으로는 오히려, 이것이 개개의 종의 습성 기록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비교한 다음 그 계통 발생을 생각하는 방법을 제공했던 것이 중요하겠지.그는 개개의 습성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기록을 했지만, 한편으로 그 번식 습성을 패턴으로 나누어 표현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그것에 따르면, 사냥 천벌의 번식 습성은 영소산란사냥감의 처리사냥감의 운반등의 요소로 나눌 수 있어 그 차례등이 벌의 군에 따라서 다르다.그는 그러한 요소를 기호에 옮겨놓아 습성의 패턴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을 제안했다.이 방법은 많은 추종자를 내, 각각 거기에 손보는 것으로 습성의 진화에 관한 논의를 했다.이것을 비교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사냥감을 사냥한 후에 산란 하는 것과 사냥하기 전에 산란 하는 것이 있지만, 아마 후자가 전자로부터 출현해, 거기로부터 부화 후도 급이 할 방향이 태어나 여기로부터 사회성 벌류가 진화했다, 라고 한 논의가 가능해졌다.이 점, 개개의 습성을 고집했기 때문에 진화론을 부정하기에 이른 Fabre와는 크게 다르다(물론 시대 배경등을 생각할 필요는 있을것이다가).

덧붙여 그 자신의 목표는 벌의 습성을 통해서 그 계통의 문제를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고도 생각되고 있다.그가 후반에 히메바치의 연구에 주력을 옮겼던 것도 그 일환이라고 보여지고 상기와 같이 사냥해 천벌류에 새로운 것이 없어진 적도 있지만, 그러한 조상에게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는 종류의 연구로 방향을 요구했다고도 잡힌다.이 종류는 이른바 기생 천벌로, 습성으로서는 바뀌어 빛나가 적고, 그는 외부 형태나 그 산란수등을 연구 대상으로 했다.다만, 이 분야는 종수가 많아, 분류도 어려운 일도 있어, 밝혀진 부분은 적고, 그 평가도 어렵다.또, 그가 전자현미경을 이용할 수 없었던 것, 그 때문에(위해) 세부의 검토를 할 수 없었던 것도 그에게 있어서의 불행했을 것이다 와 오쿠시(1992)는 말한다.

그와 관계된 사람들

이와타는 이마니시 긴지와 그 초기의 경력을 모두 있어, 이른바 이마니시 학파의 중심적인 한 명으로 보여진다.실제로 그들의 사이에는 강한 관계가 있어, 그가 대만에 정주하려고 했을 때에는, 그것을 멈추도록(듯이) 카니나 이마니시등이 움직였다고 본인도 말하고 있다.그러나, 그와 이마니시파의 다른 멤버와의 사이의 학문적인 영향은 거의 간파하지 못하고, 그는 거의 고고라고 말해도 좋은 위치에 있다.단지, 동물의 생태와 그 계통, 즉 역사적 배경과의 사이에 강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세는 공통될지도 모른다.그가 야외에서 관찰해, 기록을 남긴 벌의 분류는 주로 큐슈 대학의 야스마츠경3에 의는 내려 신종 기재되었지만 타입 표본을 포함해 많은 증거 표본을, 당시의 일본에서 표본 보존 체제가 충실한 큐슈 대학을 빙자하고 있다.

그의 직접적인 제자관계에는, 소년 시대에 이와타의 저서를 만나, 중학생(구제) 중에서 개인적으로 사숙하고, 벌의 생태 연구에 손을 댄 제자도 적지 않았지만, 후에까지 벌의 연구를 계속해, 그가 뒤를 이은 사람은 없다.타니하타 미유키는 이와타가 대학에 일자리를 얻은 후에 그 연구실의 최초의 조수가 되었지만, 후에 예술가로 전향했다.이와타가 자신의 후계자에게라고 기대하고 있던 마루야마 공작은, 중학생 시대에 이미 획기적인 논문을 보내고 있었지만, 도쿄대학 진학 후에 동물 생태학을 교육하는 연구실이 없었던 것으로부터 생화학 방면으로 전향해, 센트=제르지・알베르트의 논문에 영향을 받아 이 연구를 평소부터 친숙해져 있던 벌을 연구 재료에 추가시험해 본 것을 계기로 줄기 생리학을 세계적으로 견인하는 연구자가 되었다(다만, 만년의 지바 대학 학장 시대에, 벌의 행동 학연구를 지망하는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이와 같이 소년~ 청년기에 이와타로부터 개인적으로 지도를 받은 많은 초기의 제자나 협력자들중에서, 조금 키리자쿠규치들판 케이고가, 벌의 연구를 계속은 하지 않기는 했지만, 곤충 생태학의 분야에서 저명한 연구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직접 사사 한 층에서는 후계자를 내지 않기는 했지만, 이와타의 실적은, 사카가미 쇼우이치, 이토가 아키라등, 전후에 있어 사회성 곤충동물행동학을 추진하게 되는 생물학자가 출현한 기초를 이루었던 것이 지적되고 있다.

저작

  • 「벌의 생활」(히로후미당, 1940년) 「벌의 생활」이와나미 서점 
  • 「자연관찰자의 수기」(연구사, 1944년)
  • 「곤충의 생활과 본능」후츄 서원, 1947
  • 「곤충과 둥지 꿀벌의 둥지에 이르기까지 」세월 서원 1947 아르마 총서
  • 「사계의 벌레」분쇼도 1948즐거운 과학
  • 「곤충의 생활」후츄 서원 1949 
  • 「본능의 진화-벌의 비교 습성 학문적 연구-」(마노 서점, 1971년)
  • 「드로바치의 아옴시 꾸중」문연출판 1973문연과학의 읽을 거리
  • 「자연관찰자의 수기 곤충과 함께 50년」아사히 신문사 1975후 추천도서 
  • 「곤충학 50년 있는 내츄럴리스트의 회상」(중공신서, 1976년) -만년에 쓰여진 자전
  • 「곤충을 응시해 50년」1-4아사히 신문사1978-80
  • 「벌의 진화를 더듬는다」레버러토리 국제 교류 센터 1978 레버러토리 토요일 강좌
  • 「 신・곤충기」(아사히 신문사, 1983년)

공동편찬

  • 「일본 곤충기」 제1-6후루카와청남, 야스마츠경산쿄편코단샤 교육 도서 출판부 1959후 브르박스 

참고 링크

고고의 자연관찰자 코베대학 마나부 교수 타케다 마키생


참고 문헌

  • 이와타 히사시2수컷 「곤충학 50년」(중공신서(중앙공론사), 1976년)
  • 마루야마 공작 「약속되지 않는 땅의 경치-있는 동물학자의 걸음-」(학회 출판 센터, 2000년)
  • 오쿠시 류이치 「일본의 생태학-이마니시 긴지와 그 주변-」(토카이대학 출판, 1992년)
  • 사카가미 쇼우이치(1995), "이와타 히사시2유우 선생님의 벌학", 인세크타리무 32 (5): 4-5 .
  • 모모이절야(1995), "이와타 히사시2유우 선생님에게의 진혼가", 인세크타리무 32 (5): 7-9 .
  • 코니시 타다시태(1995), "이와타 히사시2유우 박사의 저작", 인세크타리무 32 (5): 10-11 .
  • 오오히라 유지(1995), "편집부로부터", 인세크타리무 32 (5): 30 .
  • 모모이절야(1995), "이와타 히사시2유우 선생님을 애도한다", 63 (2): 458-459, http://ci.nii.ac.jp/naid/110004022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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